카테고리 : 문한별 칼럼(2005)
2008/03/14   ‘선천성 싸가지 결핍증’을 치유하는 원천기술은 없나? [2]
‘선천성 싸가지 결핍증’을 치유하는 원천기술은 없나?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21일 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서 그랬단다. 국회 의장실 점거농성 중에 일어난 임인배 의원의 ‘폭언’ 사건과 이규택 의원의 ‘음주’건은 “사소한 실수”에 불과하다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단다. 본질적인 문제는 사학법 날치기니까 거기에 대해서(만) 물어주길 바란다고.

그 말 듣고 '웃음 아닌 웃음'(非웃음)을 한참 웃었다. 왜? 지극히 대한민국 국회의원다운 말을 했다는 생각에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답다'는 건 뭔가? 바로 이런 거다. 사물을 철저하게 당리당략으로만 바라볼 것, 상대의 말은 듣지 말고 자기 주장만 고집.관철시킬 것,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입 다물게 하고 유리한 주제만 선정해 말하게 할 것, 반대를 위한 반대를 먼저 하고 명분은 나중에 갖다 붙일 것, 우리편 들보는 아무리 큰 것이어도 무조건 싸고 돌고 상대편 티끌은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무조건 뻥튀기고 볼 것....기타 등등.

만약 열린우리당의원이 똑같은 짓을 했어도 홍 의원이 그리 말했을까? 국회 앞을 지나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물어 보라. 백이면 백 모두 고개를 가로 저을 것이다. 임인배 의원과 이규택 의원이 홍준표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이라 그게 '사소한 짓'이 되는거지, 그것들이 본디 '사소한 짓'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기본 상식이다.

냉정히 따져 보자. 국회 여직원을 향해 욕설과 쌍소리를 늘어놓은 임인배 의원의 언어폭력이 사소한 일인가? 우선 그것은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다"는 국회법 제146조에 어긋난다. 하긴 본회의장에서 카메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끄떡하면 저질.잡스런 욕설을 퍼부어대는 의원님네들에게 국회법 쪼가리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위법은 위법이다. 이론의 여지가 아주 없진 않지만.

국회농성장에서 반주삼아 한 잔 하셨다는 이규택 의원의 행위는 또 어떤가?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 안에 소주 및 양주를 몰래 반입, 그를 '드링크'했다면 그 또한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 안에서 음식이나 끽연을 할 수 없으며, 의안과 관련없는 신문·잡지 기타 간행물등을 열독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국회법 제148조에 명명백백히 저촉된다.

굳이 국회법 위반을 들먹이기 전에, 국회는 정치토론장이지 단란주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나라 금뱃지들은 왜 지각하지 못할까?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아니 하다못해 대학 동아리에서도 확실히 구별하는 토론공간과 뒷풀이공간의 차이를 가방 끈 긴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왜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정말 몰라서 그런다면 바보들이고, 알고도 그런다면 정신박약자들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국회법을 멋대로 어기는 것이 사소한 일인가? 대한민국 제일의 권력자라는 대통령도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국회에서 탄핵을 당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놀라지 마시라. 이들은 어떤 짓을 해도 탄핵당하거나 처벌받지 않는다. 왜? 애시당초 탄핵대상 목록에서 유일무이하게 국회의원만 빠져 있으니까.

국회 내에서 별별 잡스런 말을 다 하고 인신공격을 퍼부어도 이들에게는 면책특권이 부여된다. 이번처럼 여직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국회 내에서 술을 퍼마시는 등의 불미한 짓을 해서 국회법을 위반해 봤자 겨우 국회윤리위원회에 넘기는 게 전부다. 그 다음엔? 없다. 국회윤리위가 제 기능을 발휘해 자체정화능력을 선보인 적이 있던가? 없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팔이 안으로 굽는 '바담 풍' 족속들에게 바랄 걸 바라야지.

그러니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이따위로 막가는 거다. 금도배로 빛나는 국회의원 뱃지를 양복에 달고 목에는 콘크리트 기브스를 두른 채 눈을 위.아래로 치켜 뜨며 요모양 안하무인격으로 설쳐대는 거다. 여기에 더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뿌리깊은 남성우월주의까지 따따블로 흔들고 넘쳐 저보다 힘 없는 여자만 보면 'C8' 이라든가 '싸가지 없는 *' 등의 저질스런 용어를 자연스레 무의식적으로 오발.남발하는 거다.

그런데도 이것이 그저 '사소한 것'이라고? 나아가 '사소한 실수'일 뿐이라고? 홍 의원은 '실수'가 무슨 말인지나 알고 그리 말하는 걸까? '실수'는 부주의해서 컵을 엎는다든가 물건을 쏟는다든가 할 때 쓰는 말이다. 요즘 '황우석 사태'와 관련해서 언필칭 '인위적인 실수'라는 말이 횡행하는 모양인데, 이건 누구 편을 들고 말고를 떠나 명백한 말장난이다. '인위적'인 게 개입되면 그때부터 '실수'가 아니다. '실수'는 인위.작위.고의.의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실수는 호되게 나무라지 않는다. 실수는 그냥 덮어주는 것이 미덕이다. 거기에 마음이 담기지 않은 탓이다. 반면에 고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중하게 짚고 넘어간다. 마음이 실린 탓이다. 하여 묻는다. 자료나 갖다주는 힘 없는 여직원에게 "싸가지 없는 *"이라고 욕설을 퍼부은 게 단순한 '실수'인가? 국회 내엔 음식물을 들일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소주.양주를 몰래 반입해서 마신 것이 문자 그대로 정말 '실수'인가?

잘못은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것이라도 깨끗하게 털고 가는 게 좋다. 워낙에 큰 국사만 다루시는 분들이라 개인의 인격을 짓밟고 마음을 찢어놓는 언어폭력 따위는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한 정당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를 소홀히 하겠는가. 사람들이 괜히 한나라당을 향해 '쌍욕 잘하고 여자를 우습게 보는 정당' '술주정 잘 하는 정당'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거 아니다.

각설하고, 예로부터 '치국'하고 '평천하'하려는 자는 그에 앞서 '제가'하고 '수신'에 힘써야 한댔다. 제 입도 못다스리는 소인배들이 한 나라의 교육을 농하고, 제 집안의 잘못도 바로 잡지 못하는 무능한 정당이 국가의 존망을 논합네 하며 설쳐대는 것이야말로 2005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제 잘못은 모르고 오로지 남탓만 하는 '싸가지 없는 의원'들을 먼저 사람 만드는 그런 '원천기술'은 어디 없나? (2005.12.22)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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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12월, <데일리서프>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어른이 | 2008/03/14 02:06 | 문한별 칼럼(2005)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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