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문한별 칼럼(2001)
2008/03/09   닉슨, 푸틴, 밀로셰비치, 혹은 히틀러라 불리는 사나이
닉슨, 푸틴, 밀로셰비치, 혹은 히틀러라 불리는 사나이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조선일보의 공격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국정수행과 관련하여 독단적인 사람으로, 혹은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이념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혹은 인사문제와 관련해서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에 갇힌 사람 등으로 그를 비방했으나, 세무조사 이후에는 '언론을 탄압하는 독재자'로 방향을 바꾸었다.

특이한 것은 그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기보다 비슷한(?) 전력이 있는 캐릭터들을 수시로 활용한다는 것. 닉슨, 밀로셰비치, 푸틴, 히틀러 등은 조선일보가 언론탄압과 관련하여 즐겨 소환하는 단골 캐릭터들이다. 특히 여러모로 김대중과 닮은 점이 많은 닉슨은 조선일보가 제일 선호하는 캐릭터다.

여러 번에 걸친 낙선과 정계은퇴선언, 그러나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등장....

"리처드 닉슨처럼 파란만장한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대통령선거에서 케네디에게 패배한 닉슨은 62년 캘리포니아주지사 선거에서도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62년 캘리포니아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닉슨은 기자회견에서 언론을 향해 『당신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괴롭힐 닉슨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닉슨은 그 같은 그의 말을 뒤엎고 몇 년 후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대리인들을 내세워 비판적인 언론을 협박하고 탄압하고....

"러닝메이트였던 스피로 애그뉴를 앞세운 그의 언론공격은 악의에 가득찬 것이었다.... 그들의 대언론 공격은 그냥 말의 유회가 아니라 협박 그 자체였다.... 닉슨정권은 TV 방송국의 약점이 지방 계열방송국에 있음을 간파하고 집중공격을 가하는 등, 언론장악에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것이다. 닉슨은 특히 그의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싫어했다."

그렇지만 언론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그는 몰락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싫어했던 워싱턴포스트에 워터게이트라는 희대의 특종을 안겨준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4년여를 끈 워터게이트 사건 기간에 워싱턴포스트의 광고주들이 압력을 받았고, 불면증에 빠진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그레이엄은 미행당하고, 전화는 도청당하는 등, 닉슨의 언론장악 노력은 끝을 몰랐다. 그렇지만 미국의 언론은 이겼고 살아남았다."(이상, [만물상] 언론과 권력, 2001.2.7)

이것만으로도 이미 조선일보가 닉슨을 빌어 누구를 비난하고자 하는지, 또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좋은 소재를 한 번 쓰고 말 조선일보가 아니다.

닉슨은 '준비 된 대통령'이란 말을 듣고, 독서량도 많아 해박했으나....

"'가장 준비가 잘 된'(the best prepared) 대통령감이라고들 했다. 그럴만도 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상.하 양원의원을 두루 거치고 두 번씩이나 부통령을 연임했으니 경력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시저부터 글래드스톤, 디즈레일리에 이르기까지 고금 정치가들의 전기를 거의 다 훑다시피 했다. 미국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바로 그다."

그는 결코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단다. 그는 또한 거짓말에 능하고....

"그러나 그는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10인 중 한 사람(나타니엘 밀러 : The Star-spangled Men)으로 낙인찍혔는가 하면 '내가 만났던 가장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악평도 들었다(64년 공화당 대통령후보 배리 골드워터). "그는 그의 아내.가족.친구에게도 거짓말을 했으며, 소속 당도 그의 조국 미국도 속였다"는 것이었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권과 수교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어쨌든 닉슨은 역사에 남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원했다. 그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는 중국을 직접 방문하여 미.중 수교의 길을 텄으며 베트남 협상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의 소망과는 달리 국세청을 동원하여 정적들을 뒷조사한 것으로 오히려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됐다.

"그는 국세청을 동원하여 정적들을 뒷조사하는 데 영일이 없었다. 이런 일로도 그는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됐다." / (이상, [만물상] 닉슨 대통령, 2001.5.18)

미국의 닉슨과 한국의 김대중을 교묘하게 오버랩시켜 내밀한 원망을 퍼붓는 조선일보의 기술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조선일보는 그러나 이 정도로는 아직 멀었다는 듯, 또 다른 캐릭터를 불러 들인다. 닉슨의 후속타자로 호출된 이는 바로 인간백정 밀로셰비치...! 집권 시절 언론을 장악하려 했다는 것이 그가 호출당한 이유다.

"코소보의 '인간청소'로 전세계를 경악케 했던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최근 교도소 생활이 시시콜콜 세계의 수많은 매체에 보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집권 시절 그가 야비하리만큼 철두철미하게 장악하고 이용했던 그 미디어들에 의해 그는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밀로셰비치는 미디어들을 하나 하나 장악하여 충복들에게 넘겨 주었는데....

"시당 위원장으로 그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일은 권력과 미디어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이념이 점차 퇴색해가자 미디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철저히 유고의 미디어들을 손아귀에 넣기 시작했다. 그에게 순종하고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저널리스트들을 모아 그는 이들을 모든 매체에 한사람 한사람씩 심어간 것이다."

유고판 조선일보(?)인 '폴리티카'도 결국 장악되고 말았다....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권위있는 신문은 '폴리티카(Politika)'였다. 당시 언론통제가 심했어도 영향력있는 폴리티카의 기자들은 오만한 당 간부들한테 전혀 굽히지 않았고 또 의연하게 맞서 정도와 권위를 지킨 그런 신문이었다. 그렇던 폴리티카도 너무나 무력하게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장악된 매체들은 정권의 홍위병 노릇이나 하는 수 밖에 없었다.

"'TV는 친구 누구에게…' 이런 식으로 모든 매체는 장악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매체들은 정적들을 벌떼 같이 매도하면서 그의 권력 등정에 홍위병이 된 것이다...." / ([만물상] 밀로셰비치와 언론, 04/11)

절묘한 메타포다. 새롭게 떠오르는 '언론탄압의 독재자' 김대중 치하의 한국 상황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한다는 건 불가능할 게다. 조선일보는 내친 김에 푸틴 러시아대통령까지 끌어 들인다. 그 역시 언론탄압과 관련, 악명을 떨치고 있으므로. 게다가 세무조사를 빙자해 언론을 탄압한 상황이 한국의 그것과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지....

"지난달 모스크바에서는 푸틴 대통령 집권 후 최대의 반정부 시위군중이 거리를 누볐다. 러시아의 저명한 예술인 정치인 언론인 등 2만여명이 참가한 '언론탄압 규탄' 시위였다. "NTV(러시아의 민간 TV방송)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시위대들은 가혹한 세무사찰 등 정부의 집중적인 괴롭힘을 받고 있는 NTV에 대한 탄압 중지와 자유언론을 호소했다."

푸틴과 NTV의 관계는 김대중과 조선일보의 그것과 같다....?

"비판적 성향의 러시아 최대방송인 NTV는 푸틴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푸틴이 주도하는 체첸전쟁의 어두운 양상을 가감 없이 보도하는가 하면, 작년 핵잠수함 침몰사건을 신속히 다루지 못한 푸틴을 거침 없이 비판했다. 결국 푸틴은 세무사찰의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이 TV의 구신스키 회장과 재정 책임자 등을 세금포탈 및 사기 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현대판 독재자들은 세금포탈죄를 적용해 민주언론을 탄압한다....?

"이 무렵 국.공영 언론기관들은 "언론이라 해서 세금포탈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NTV와 구신스키 회장에 대한 비난에 발벗고 나섰다. 러시아정부는 "언론탄압이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과거 소련시절에는 정권에 비판적이면 반체제 인사가 됐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탈세범이나 사기꾼이 되기 십상이다"라고 러시아의 한 원로언론인은 장탄식을 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어디서 많이 본 듯 한데....?

"푸틴은 결국 그렇게 미워했던 NTV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가스프롬은 NTV의 키슬로프 주필 등 비판적 언론인들을 대거 축출했다. 어디서 본 듯한 푸틴의 언론통제 방식은 교묘했다...." / - ([만물상] 푸틴과 NTV 04/06) -

이 정도면 가히 예술의 경지다. 조선일보가 괜히 '대한민국 대표신문'이란 말을 듣는 게 아니다. 감히 어떤 신문이 조선일보와 상상력을 견줄 수 있겠는가. 이처럼 신묘막측한 조선일보의 상상력에 마지막 입신의 점을 찍은 이는 문학평론가 홍사중 씨다. 그는 인류 최고의 독재자 히틀러까지 소환해내고야 만 것이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요새 히틀러의 망령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그 모습은 영화 '독재자'의 찰리 채플린 같기도 하고 조지 오웰이 말한'빅 브라더(장형)'같기도 하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의 소설'마리오와 마술사'에 나오는 티포라 같기도 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꾼다.

"어느 해변가의 호텔에 떠돌이 마술사가 나와서 마술쇼를 보여준다. 눈이 날카롭고 검은 콧수염을 기른 그는 손님들에게 최면술을 건다. 어느 사람은 그의 명령에 따라 춤을 추고 어떤 손님은 그를 애인으로 착각하고 그의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명령을 잘 따라하지 못했다며 매를 맞는 손님도 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마술사가 하라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따라 움직인다. 그것은 대중선동가 히틀러의 카리스마에 걸려서 놀아나는 대중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었다."

가위에 눌려 꿈에서 깬다. 그러나 눈을 뜨고 바라보는 세계도 꿈과 다를 바 없다.

"『히틀러의 독재는 현대의 선전기술을 조직적으로 발휘하여 비로소 가능했다. 그의 철저하고도 교묘한 언론통제로 8000만의 국민은 자주적인 사고를 잃어 버렸으며 모든 반대여론은 여지없이 짓밟혔다… 옛 독재자들과는 달리 현대의 독재자에게는 여론조작수단만 있으면 하층 지휘계통을 얼마든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이리하여 위로부터의 명령을 순순히 따라가는 새로운 타입의 인간이 나타나게 된다….』"

마침내 악몽과 현실이 하나가 된다. 그리고 히틀러의 망령은 오늘도 청와대에서 웃음을 띤 채,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떠벌리고 있다.

"히틀러의 망령들은「다정한 파시즘」의 저자 버트럼 그로스의 말을 빌린다면『웃으면서 다가온다. 입으로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을 말하지만 고도의 지배기술을 활용해가면서 어느 사이엔가 개인의 모든 면을 보다 철저하게 묶어나간다.』 분명 히틀러는 죽었지만 그의 망령은 때에 따라 곳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꿔가며 아직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 연명해가고 있다...." / ([홍사중 문화마당] 히틀러의 망령, 6.26)

김대중, 그는 - 조선일보에 의하면 - 탐욕과 악의 화신이다. 그는 세계인들로부터 '평화와 인권의 전도사'라 불리지만,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를 '또 하나의 닉슨', '한국판 밀로셰비치', '제2의 푸틴', '되살아난 히틀러의 망령'이라 부른다. 이를 일컬어 "김대중의 세계화"라 하여 기뻐할 것인가.

일찍이 조갑제가 언론의 전능에 대해 일컫기를 "죽을 사람도 살리고, 살 사람도 죽이며, 악마를 천사로, 천사를 악마로 바꿀 수도 있는 현대의 마술사"([최악의 오보는 은폐다], 1982)라 했다더니 과연 진실로 그러하다. 그런데 조선일보 입장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러시아의 경우처럼, 국민들 사이에서 김대중의 언론장악과 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아니, 국민들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기자들부터라도 나서야 할 텐데 어이된 일인지 김대중의 언론탄압에 가장 분개해야 할 일선 기자들조차 조선일보의 주장에 귀를 막고 "세무조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으니, 아무리 신통망통한 조선일보의 전능이라도 이것만큼은 통하지 않는가 보다. 애제라....!

그런데 이처럼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함부로 배설하는 조선일보가 "진짜 탄압받는" 신문 맞어? (2001.7.23)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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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1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어른이 | 2008/03/09 22:22 | 문한별 칼럼(200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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