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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쓰나미’ 대선정국 쑥밭>
14일자 한겨레신문의 헤드라인이다. 한겨레는 '신정아 쓰나미'로 '이명박 국감->신정아 국감', '노무현 정부 도덕성 추락', '친노 후보군 함께 타격', '통합신당 경선 흥행실종', '정책대결 자질검증 뒷전' 등이 한꺼번에 날아갔다고 지적했다. ![]() ▲ 14일자 한겨레신문 헤드라인 ⓒ한겨레 ![]() ▲ 14일자 중앙일보 5면에 실린 관련기사 ⓒ중앙일보PDF 같은 날 중앙일보도 <대선 정국 덮친 ‘신정아 쓰나미’>(5면 톱)에서, 범여권에 "경선 흥행 완전 실패"와 청와대에 "남북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고 보도했다. 한나라당이 표정 관리에 나설 만큼 ‘신정아 쓰나미’가 정치권 특히 범여권에 미친 파괴력은 실로 대단했다는 것이다. 이들 신문의 말마따나 ‘신정아 쓰나미’의 위력은 엄청났다. 논의 중이던 모든 이슈가 그 앞에서 자동 소멸됐고, 예정된 정치현안들도 '신정아'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이처럼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폭발력을 동반한 ‘신정아 쓰나미’의 시작은 뜻밖에도 소소했다. 그 문을 연 것은 모 종교계의 알력에서 불거진 학력위조 사건이었다. 예일대를 졸업했다는 신정아의 최종학력이 거짓으로 밝혀진 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 바꿔 출연하는 학력 디스카운트 옵니드라마가 높은 시청율 속에 인기리에 방영되기 시작했고, 관객들은 그들의 낯뜨겁고 부실한 속살경쟁을 때론 얼굴을 붉히고 때론 콧방귀를 뀌면서 구경하는 재미에 한참을 빠져 살았다. 여기까지가 1막이었다.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강풍인 줄만 알았던 신정아 사건이 무서운 지진으로 발전한 것은 조선일보가 신정아와 변양균의 관계에 앵글을 들이대면서부터 였다. 조선일보 보도를 계기로 신정아 사건은 단순한 학력위조 사건에서 청와대 실세까지 등장하는 권력형 비리로 급반등했다. 덩달아 코앞에 다가온 추석과 국감 전력이 맞물리면서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도 거세어졌고, '신정아-변양균 의혹'은 각 신문이 가장 선호하는 메뉴가 됐다. 이것이 2막이었다. 1막과 2막의 콘텐츠가 비록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득은 없지 않았다. 학력위조 사건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학벌숭상 풍조를 잠시나마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는가 하면, 신정아-변양균 커넥션을 통해 더이상 청와대를 무서워 하지 않는 '겁대가리 없는' 검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정권 말기라 하더라도 예전 정권 같았으면 검찰이 이처럼 청와대를 흔들어 댈 엄두조차 내지 못 했을 것이다. 아무렴. 3막 '쓰나미의 완성'을 가능케 한 것은 두 장의 누드사진이었다. 9월 13일 문화일보가 '신정아 누드사진'을 지면에 게재한 것을 기점으로 강풍에서 지진으로 이어진 신정아 사건은 마침내 추악하기 그지 없는 '쓰나미'(해일)가 됐다. '신정아 누드'가 몰고 온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것은 서 있는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앞서 지적한 정치적 현안은 물론 위태롭게 남아있던 언론에 대한 한 가닥 기대까지 송두리째 날려 버렸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지만 '신정아 앞뒤 누드' 2장을 지면에 내보낸 문화일보의 '막가는' 편집 앞에서 사람들은 경악했고,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치를 떨었다. 신정아의 학력위조와 권력형 비리보다 몇백배 몇천배 더 무서운 언론의 무지막지한 횡포와 가공할 살의(殺意) 앞에서 공포와 전율을 체험해야 했다. 살의. 그렇다. 나는 앞에서 '살의'란 말을 썼다. 문화일보의 '신정아 누드'는 기사가 아니라 기사로 위장한 칼부림이고 저격이다. 사람을 꼭 칼로 베고 총으로 쏴 죽여야만 살인이 되는 것 아니다. 인격살인은 이것보다 몇백배 더 잔인하고 치명적이다. 죽은 자라도 함부로 명예를 훼손하지 못 한다. 하물며 산 자임에야. 그가 설혹 죽을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의 인격마저 함부로 훼손하거나 난도질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문명의 합의다. 그러나 문화일보는 이러한 합의를 가뿐히 뛰어 넘었다. 그들에게는 저널리스트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염치나 부끄러움 따위도 없었다. 있느니 오로지 검색어 1위를 달성해 보겠다는 얄팍한 상술과 이를 이용해 자기네가 지지하는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을 만들고자 하는 더러운 술수만 나붓길 뿐. 이날 문화일보는 신정아 누드를 내보내면서 8면(사회면)에 <욕설 현수막...막말 방송... 막가는 사회>란 제목을 큼지막하게 달았다. 타인의 명예를 멋대로 짓밟는 저열한 욕설언어가 판치는 이 땅의 문화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 문화일보 13일자 8면에 실린 사회비판 기사 ⓒ문화일보PDF 문화일보는 이 기사에서 한 외국인의 입을 빌려 "사적으로도 입에 담긴 힘든 욕설이나 타인의 죽음을 비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여성을 회에 비유하며 "신선해야 돼. 쳐야 돼" 라고 발언한 것도 비판목록에 집어 넣어 소개했다. 그리고 29면 인물란을 통해 세계여성포럼에 참석한 앨빈 토플러의 "세상 알려면 신문 꼭 읽어라"는 말을 비중있게 처리했다. 문화일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자신들은 올곧은 언론이며, 그래서 이 사회를 꾸짖고 훈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 자신들은 '막가는 사람들이나 사회'와는 다르다는 것? 자신들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이나 기사를 절대 올리지 않으며,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그런 류의 저질언어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문화일보를 꼭 구독해서 읽어 달라는 것? 설마 그렇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 문화일보가 자신은 여기에 해당사항이 전무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말을 입에 담았다면, 문화일보는 제 정신이 아니거나, 선천성 거짓말장이거나, 그도 아니면 양심이 마비된 사이코패스거나, 이 셋 중에 하나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사회적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신정아 누드'를 거리낌 없이 게재한 막가는 신문지가 이런 식의 입바른 말을 지껄인다는 자체가 엽기다. 더 무슨 말을 하랴. 나는 지금 신정아 누드를 지면에 내보낸 문화일보의 파렴치·몰염치를 규탄하면서도 누드가 담긴 관련기사를 차마 캡쳐해서 올릴 수가 없다. 왜냐고? 그래야 하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신정아 누드 파문'을 소개한 TV뉴스도 그림 없이 관련사실만 보도했다. 누구보다 그림이 필요한 TV뉴스에서조차 차마 그 그림을 내보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정상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모든 언론들이 다 이런 건 아니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몇몇 신문들은 문화일보의 신정아 누드 파문이 일어나자마자 마치 썩은 시체를 기다리는 하이에나처럼 덤벼 들었다. 조중동은 13일 인터넷판을 통해 모자이크 처리된 신정아 누드를 메인면 톱으로 실컷 우려 먹고는 이후 분위기가 비판적으로 흐르자 이에 편승해 다시 태도를 바꾸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경향신문이었다. 진보신문으로 평가받던 경향신문은 14일 지면에 신정아 누드사진을 노출하는 파격을 단행했다. 전체를 모자이크 했으니 문화일보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발뺌할까? 웃기는 소리다. 그럴 바엔 애시당초 누드사진을 퍼오지나 말지. 어쩐지 경향신문 인터넷판에 벌거벗은 여인네들 그림이 '19금'도 안 걸치고 마구 설치더라니... 아무튼 이번 사건으로 '무늬만 진보' 경향의 핑크빛 실체가 만천하에 뽀록났다. 조중동문의 기존 4인방에 경향이 새로 가입한 모양새랄까. 앞서 문화일보가 13일자 지면에 '신정아 누드'를 내보내면서 뒷면엔 앨빈 토플러의 말을 인용해 "세상 알려면 신문 꼭 읽어라"는 기사를 실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앨빈 토플러가 이렇게 천박한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을 제대로 알았다면 그런 말을 입에 담았을까?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포르노물 '강안남자'로 재미 본 문화일보가 '신정아 누드사진'으로 대박을 터트린 걸 만약 그가 알았다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누드장사에 눈이 벌개져 덤벼드는 걸 만약 그가 알았다면, 오히려 "신문을 읽지 말라"고 극력 경계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한나라당은 좋겠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 수록 이명박 후보의 비리와 의혹이 들통날까봐 조마조마 하던 차에, '아프간 인질사태'다 '신정아 누드'다 해서 대형사건들이 옆에서 뻥뻥 터져주는 바람에 시선분산 효과를 만끽할 수 있게 됐으니 이 얼마나 지극한 행운인가.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덜 가져줘야만 이득을 볼 수 있는 정치인의 초라함이라니. 나같으면 그런 짓거리 당장 때려치우고 말겠다. (2007.9.17) - 어른이 - --------------------------------------------------------------------------------------------- *** #. <데일리서프>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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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by TNS at 08/19 예전 글이군요... 공모.. by 흠... at 08/19 ㅎ by 엄마 at 08/17 이글을 복사해서 단 3군.. by ddd at 08/13 이대통령에게 너무나 안.. by 안영목 at 08/09 진짜 막장이네, 어떻게.. by 에구 at 08/08 ㅁ맛잇어 보이네요 위치.. by 영숙 at 08/06 와 정말 예쁘네요. 블로.. by 아톰 at 08/03 .. by 프리 at 07/24 씨발 엘프새끼들아 니네.. by 프리 at 07/24 가 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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