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관대하다. 페르시아 왕만 관대한 게 아니다. 안티조선의 '얼티메이트 워리어'라 자부하는 나 또한 관대하다. 관대한 나는 이하의 글에서 조선일보, 특히 조선일보의 동물적 감각을 칭찬하려 한다. 조선일보의 동물적 감각을 칭찬하는 것과 그들의 음험한 논조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별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부연하지 않아도 잘 아실 터이니 패스~! 언론으로서의 조선일보는 참 문제가 많은 신문이다. 문제가 많다 못해 사악하기 그지없는 신문이다. 누가 말한 것처럼, 독극물보다 더 나쁘다. 그러나 지면구성은 셈 날 정도로 깔끔하다. 특히 독자들의 정서를 미리 읽고 그 분위기에 영합하는 재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이들도 이 점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아프간 땅에서 풀려난 인질들 소식을 다룬 30일자 신문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 보자. ![]() ▲ 8월 30일자 동아일보 1면에 걸린 사진. 대부분의 신문에서 같은 사진을 실었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이 날의 메인톱은 인질 석방 소식이었다. 몇몇 신문은 귀환하는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춰 <탈레반 인질 12명 풀려났다>(중앙), <"아, 자유!"...12명 먼저 나왔다>(동아)고 환호했다. 어떤 신문은 남아있는 일부 인질에 초점을 맞춰 <3명...5명...4명... 7명 남았다>(한국)고 호흡을 조절했다. 먼저 오는 이들과 나중 오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탈레반 "오늘 석방 완료">(경향), <인질 12명 석방..."오늘까지 다 풀려난다">(한겨레), <남은 7명 오늘 모두 석방">(서울)로 기대감을 표시한 신문들도 있었다. 반면, 조선일보는 헤드라인을 <집으로!> 3글자로 해결했다. 원래 크낙한 기쁨과 감격에는 산문보다 운문이 더 어울리는 법이다. 조선일보의 탁월함이 바로 여기 있다. 다른 신문들이 인질석방 소식을 자세히 알리려 산문조 제목을 가다듬을 때, 조선일보는 홀로 시를 노래했다. 제목 하나에서도 차별성을 의식한 조선일보의 전략은 그래서 더 돋보인다. 사실 <집으로!> 이 한마디 외에 별로 덧붙일 말도 없지 않은가. 인질 석방과 관련한 사진 선택에서도 남다름을 고집한 조선일보의 뚝심이 빛났다. 이날자 거의 모든 신문들은 고세훈씨와 히잡을 둘러쓴 여성인질들이 이동하는 사진을 1면에 배치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보다 먼저 풀려난 이선영 씨가 환하게 웃는 사진을 1면의 얼굴로 선택했다. 이날 이씨의 웃음을 1면에 내건 신문은 조선일보 말고 한겨레 밖에 없다. ![]() ▲ 8월 30일자 조선일보 1면 ![]() ▲ 8월 30일자 한겨레신문 1면 조선일보 1면과 한겨레 1면을 비교해 보자. 먼저 조선일보를 보면, <집으로!>라는 짤막한 제목과 활짝 웃는 여성인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포로로 억눌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생환의 기쁨을 이보다 더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반면, 한겨레는 제목과 그림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이 씨의 환한 웃음과 <인질 12명 석방..."오늘까지 다 풀려난다">는 제목이 한 동선으로 연결되지 않고 위.아래로 분산된 탓이다. 같은 사진, 다른 제목의 차이는 이렇게 컸다. 사진의 선명도와 색상에서도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조선일보의 사진은 환한 웃음답게 색상도 밝고 선명하다. 그러나 한겨레의 그것은 빛바랜 필름처럼 어둡고 그늘져 보인다. 이 씨의 밝은 웃음조차 가릴 만큼. 조선일보가 사진을 손 댔는지 안댔는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때 그렇단 얘기다. 상술한 것처럼, 지면을 꾸미는 조선일보의 편집술은 타신문이 감히 넘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것은 감각의 승리다. 문제의식의 승리다. 인질 생환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 독자들의 필(feel)을 한 방에 충족시킬 그림을 찾으려는 데스크들의 고뇌의 산물이다. 다른 신문의 1면에서 나는 이같은 고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 하겠다. 각설하고,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가? '안티조선의 최후의 전사'라 자처하면서 왜 조선일보를 칭찬하는 글 따위를 쓰는가? 나의 관대함을 과시하려고? 그건 웃자고 한 소리다. 실인 즉, 조선일보를 이기려거든 더 분발하잔 소리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상대인 조선일보를 정확히 알자는 거다. 상대가 나빠도 인정할 건 인정하잔 소리다. 비록 그것이 수긍하기 싫은 장점이라 할 지라도. 조선일보는 독극물이다. 참을 거짓으로, 거짓을 참으로, 작은 것을 크게, 큰 것을 작게 만들어 사람을 호리고 진실을 가리는 사회의 흉기다. 문제는 이런 흉기가, 이렇게 무서운 독극물이 매끄럽고 예쁜 그룻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릇의 매끄러움만 보고 찬탄한다. 그 속에 든 내용물도 마찬가지로 번듯하고 좋을 것으로 지레 짐작한다. 조선일보의 위험성이 거기 있다. 그를 알면서 어찌 경계하여 말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2007.8.30)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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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by TNS at 08/19 예전 글이군요... 공모.. by 흠... at 08/19 ㅎ by 엄마 at 08/17 이글을 복사해서 단 3군.. by ddd at 08/13 이대통령에게 너무나 안.. by 안영목 at 08/09 진짜 막장이네, 어떻게.. by 에구 at 08/08 ㅁ맛잇어 보이네요 위치.. by 영숙 at 08/06 와 정말 예쁘네요. 블로.. by 아톰 at 08/03 .. by 프리 at 07/24 씨발 엘프새끼들아 니네.. by 프리 at 07/24 가 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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