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있는 한국인 피랍자들은 샘물교회 소속의 젊은 일반 신도들이 주축이지만 이들 중에는 선교 목적으로 이미 해외를 다녀온 경험자들이 많다고 한다. 피랍자 중 현지에서 합류한 임현주 씨는 의료봉사단체로 알려진 에이엔에프(ANF)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지만, 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 단체는 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슬림의 기독교 개종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해외 배낭여행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라 교회 차원에서 적극적이고 야심차게 조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에 비하면 이들의 현지선교 활동은 선교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열흘 남짓한 일정의 ‘단기선교’라는 희한한 이름이 말해주듯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에 다가간다는 건 기적이 일어나야 가능할 것이다. 외국인과 기독교인이 적으로 내몰리기 쉬운 나라에서 며칠 안에 자신들의 종교를 퍼뜨리고 오겠다는 발상은 철없음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선교 대상으로 삼은 현지인들을 그만큼 만만하게 보았다는 뜻이다. 위험지역에서 자신들의 안전문제를 아랑곳하지 않은 처신도 “이교도들 쯤이야…….”하는 사고에 휘둘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종교를 가볍게 보는 태도야말로 교회가 해외선교에 열을 올릴 수 있는 밑바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가 2명이나 발생했음에도 피랍자들이 여론의 동정을 얻기보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비난을 받고 있는데 대해 한국 교회는 피랍자들의 경박한 처신 뒤에 숨은 폭력적 사고를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 ▲아프가니스탄 여행을 자제해 달라는 경고문 앞에서 사진찍고 있는 샘물교회 신도들 국제선교 활동단체인 <개척자들>의 한 관계자는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에서, 피랍 사태를 불러온 공격적인 선교 방식의 폐단에 수긍하면서도 위험지역의 선교활동을 멈추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개척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에게 기독교 선교는 헐벗은 땅을 개간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가 들어서지 않은 땅을 미개지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 위험한 선교가 불러일으킬 사고는 끊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인의 눈에 미개척지인 땅일수록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고유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굳건한 믿음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위험한 지역일수록,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말리는 곳일수록 선교 열정이 타오르는 ‘개척자’들은 교회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영웅심과 우월감에 빠진 딱한 인생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선교를 사명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곧잘 보지만, 모든 선교 활동은 이미 그 안에 공격성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교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이미 자신과는 다른 종교나 종교관을 가진 사람에 대한 우월의식을 전제로 한다. 종교가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는 한, 다른 이의 개입이나 관여는 자신의 존엄성을 침해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남에게 자신의 종교를 권유하는 행위는 한 사람의 영혼을 가치 없는 것으로 깎아 내리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지 않는 한 나오기 힘들다. “당신이 내 종교를 믿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판단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천지 간에 아무도 없다. 한 사람의 삶을 재단하고 평가할 권리는 신이라도 갖고 있지 않은 권리다. 하루에도 수없는 희로애락의 파고를 삶의 무늬로 새기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특정 종교에 대한 숭앙이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전도하는 종교인에게 자신의 신산스러운 삶이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는 듯한 거부감을 물리치기 힘들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만 소중한 게 아니라는 점을 모르는 한,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자신의 종교나 종교관에 간섭을 받지 않고 싶지 않는 타인의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슬람권 국가들이 종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선교행위를 막거나 코란의 번역에 적극적이지 않는 등, 자신의 종교를 퍼뜨리는 데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종교를 강요하거나 권유하는 것의 폭력성을 십분 알기 때문이다. ![]() ▲샘물교회의 이번 아프간 파송이 선교활동이라는 누리꾼들의 지적과 이를 보도한 MBC 뉴스 비종교인이 종교인에게 감화를 받거나 그의 종교에 마음이 기운다면 그건 종교홍보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 아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평소 됨됨이가 해당 종교에 대한 태도를 만든다. 자신이 늘 행복해 죽겠다고 노래를 부르는 기독교인들과 달리 진정한 종교 활동은 복락을 덥석 안겨줄 것 같지는 않다. 종교를 가졌다고 하여 만족과 기쁨을 얻는다고 말하는 건 가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종교가 주는 선물은 스스로 종교를 욕되게 하는 일이 없는지 돌아보며 자신을 담금질하게 하는 겸허와, 신성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는 데서 오는 고통이 더 많을 것이다. 신에 대한 경애심은 기도 횟수나 요란한 간증이 결코 증명해주지 않는다. 나 같은 비종교인은 신 앞에 무릎 꿇을 줄은 모르지만, 신에 대한 겸손함을 세상에 실천하는 종교인이 있다면 존경할 줄은 안다. 주(主)를 대할 때와, 자신과 종교가 다른 이웃을 대할 때가 같지 않은 신자는 자신의 종교를 욕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독교’라는 명칭은 개신기독교의 줄임말로 볼 수도 있지만, 한국 교회에 비판적인 이들에게는 교회를 야유하는 격한 표현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마다 있는 종교 토론방에는 이 명칭이 기독교의 속칭인 양 굳어졌으며, 피랍사태가 난 이후로는 한국 교회에 대한 적의가 더 커지고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피랍인들에게 호의적이기는커녕 기독교의 반성을 촉구하는 여론에 기독교인들은 할 말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남의 영혼에 개입하기를 서슴지 않는 선교행태 등 기독교인들의 배타주의에 상처를 받은 이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아우성으로 느껴진다. 기독교인들에게 영혼의 상처를 입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속마음이야 어떻든 인질사태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피랍사태에서 간과할 수 없는 건, 한국 교회가 미국의 침략전쟁에 신음하는 나라를 선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미국의 군사적 침략주의에 편승한 문화적 침략행위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미국이 짓밟고 있는 나라에 교회가 미국의 종교를 선교하러 간 것은 제국주의의 회로 속에 움직이는 한국 주류 개신교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국 기독교의 유래 없는 배타성은, 미국을 정신적 고향으로 숭앙하는 개신교 주류 세력이 분단 이후 남한을 반공의 보루로 삼고 군사적 팽창주의를 확대해 온 미국에 편승하여 교회 규모를 폭발적으로 키워온 것과 무관할 수 없다. 미국의 패권주의는 교회가 이 땅에서 종교권력을 넘어 배타적인 정치권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구실로 작용했다. 미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방식과 교회가 몸집을 키우는 전략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미국이 군사적 침략과 전쟁 위협을 통해 세계 패권을 추구했듯이, 한국 개신교는 물불 가리지 않는 선교, 각종 탈법과 비리, 독재정권과의 유착 등을 통해 건드릴 수 없는 공룡 몸집을 불려왔고, 지금은 개혁에 대한 조직적 저항에 나섬으로써 교회 천하를 사수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침략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상대국의 ‘불쌍한’ 국민으로부터 환영받을 것이라는 착각을 곧잘 한다. 아프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미국에 동조하여 파병한 한국이 자신들의 군대가 현지인에게 환영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침략국의 종교를 퍼뜨리고자 하는 한국 교회에 아프간 국민들의 고통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국과 그의 동맹국들에 의해 피붙이와 친지를 잃은 주민들이 미국의 종교를 환영하겠는가 하는 의문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빌붙어 정치권력으로 군림해온 한국 개신교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군사침략이 터놓은 길을 따라 십자가를 꽂고자 하는 종교가 있는 한, 아프간에서 일어난 비극이 언제든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누군가는 이슬람권에 선교하는 행위를 탈레반의 물리적 테러 못지않은 ‘정신적 테러’ 행위라고까지 표현했다. 개신교는 자신들의 행위가 미국의 군사공격 못지않은 문화적 침략일 수 있음을 헤아리는 자성이 필요하다. by 정문순 (문학평론가) ------------------------------------------------- *** #. 정문순 씨는 '여성'과 '문학'이라는 두 거대담론을 붙들고 끊임없이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실력있는 문학평론가입니다. 현재 <경남도민일보>, <대자보>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허락을 얻어 본 블로그에 그의 칼럼을 옮겨 싣습니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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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by TNS at 08/19 예전 글이군요... 공모.. by 흠... at 08/19 ㅎ by 엄마 at 08/17 이글을 복사해서 단 3군.. by ddd at 08/13 이대통령에게 너무나 안.. by 안영목 at 08/09 진짜 막장이네, 어떻게.. by 에구 at 08/08 ㅁ맛잇어 보이네요 위치.. by 영숙 at 08/06 와 정말 예쁘네요. 블로.. by 아톰 at 08/03 .. by 프리 at 07/24 씨발 엘프새끼들아 니네.. by 프리 at 07/24 가 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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