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 현상과 이송희일 파동에 대하여....


조심스럽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왜 매번 이런 식일까?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무슨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왜 영화 한 편을 가지고 나라가 개싸움판이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오락영화 하나 흔쾌히 봐주지 못하는 그 알량함과 일부 대중의 과도한 공격성이 일을 키우고 있다.

원래 나는 디워 파동을 촉발한 한국 지식사회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강박에 대해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이 점점 커져 접었다. 일반 대중이 소수 지식사회를 난타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난 우리 지식사회의 안일함이 지금의 민생파탄을 초래했다고 보지만, 대중의 반지성주의도 위험하다고 본다.

결국 또 양비론이다. 패턴이 항상 비슷하게 흘러간다. 이런 유형의 사건이 터지면 난 처음엔 아주 세게 한쪽 입장을 개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과도한 공격성을 보며 머리 속에 빨간불이 켜진 다음 양비론으로 주저앉는다. 그리고 양쪽으로부터 난타당한다. 외톨이가 된다. 결국 내 업보인 것 같다. 해방공간이었다면 나 같은 유형은 아마 제일 먼저 테러당했을 것이다.

푸념이 길었다. 이 글을 쓰기가 그만큼 조심스럽다. 안 쓰려던 글을 쓰게 된 건 이송희일 감독의 ‘막가파식으로 심형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라는 글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즉각 ‘욱’했다. 그런데 ‘욱’하는 기분을 글로 풀어버릴 순 없다. 이송희일 감독의 글에 반대하지만, <디워> 반대자들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공격에도 반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욱’해서 글을 쓰면 그 공격에 포탄 하나 보태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럴 순 없다. 하지만 이송희일 감독의 문제의식엔 명백히 반대한다. 글질해먹기 참 힘들다.

내가 보기에 <디워> 파동은 지식사회가 촉발했다. 인터넷에 나도는 전문평론들을 보니 여느 대중오락물을 보는 시선과 <디워>를 보는 시선이 사뭇 달랐다. 심형래 감독은 ‘왜 나만 갖고 그래’라며 항변했고 그것은 이치에 닿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식사회는 요지부동이었다. 뭔가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진 느낌이다. 누리꾼들은 분노했고, 지식사회는 그것을 보며 대중파쇼를 감지했던 것 같다.

나도 누구보다 대중파쇼의 위험성을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정상적인 월급도 포기했던 사람이다.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도 과히 좋아하지 않고, 자유화에도 반대한다. 수요자 중심주의에도 당연히 반대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이번엔 지식사회가 잘못하고 있다. 이 말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 이렇게 긴 사설을 늘어놓는 나도 참 옹색하다.


이송희일 감독의 글에 대하여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우리나라 지식사회에게 전가의 보도다. 사람들이 좀 모여 있다 싶으면 어디선가 그들이 나타나 외친다. ‘이건 민족주의의 광풍이야~ 당신들은 홍위병이야~’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경멸하는 것이 한국 지성인에겐 명예의 증표가 되었다.

난 그것이 너무 과하다고 느낀다. 지금은 국가주의를 무작정 폐기할 때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가, 공화국을 세울 때다. 국가주의를 폐기하려 광분하는 건 기득권 세력이다. 정부해체, 국가장벽 해소, 탈규제 공세가 인간성을 침탈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조차 지식인들이 여전히 반국가주의 화두를 부여잡고 있는 건 황당하다.

또, 성장과 발전을 냉소하는 것이 유행인데, 성장 없이 국민이 행복할 수 있나? 산업경쟁력 없이 국민이 노예가 되지 않을 길이 있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십수년 만에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것은 안티 운동만 하다가 발전에 대한 능력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송희일 감독이 경멸의 어조로 말한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을 보며 감격하고, 그 모방을 해내기 위해 열정을 불사르는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모직물, 가발, 운동화를 수출하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나이키 축구공을 하청생산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난 이런 나라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약소국이며 후진국이다. 선진국과 우리 사이엔 지식격차가 가로놓여 있다. 이것은 거대한 장벽이다. 난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 심대한 크기에 압도당한다. 지구상에서 그 누구도 이차대전 이후에 이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구상에서 그 누구도 이차대전 이후에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했다. 일본이 막차였다.

우리나라는 이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하는 중이다. 영화의 규모와 특수촬영 기술은 그 나라의 수준을 반영한다. 옛날에 나이트클럽에 가면 팝과 가요를 전주만 듣고도 구분할 수 있었다. 가요의 음질이 현격히 빈약했다. 서태지가 이 장벽을 깼다. 서태지는 영웅이 되었다. 아무리 한국영화가 재밌다고 해도 우리 영화와 미국 블록버스터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 서로 딴 세상이다. 그 거리를 한국인은 모두 암묵적으로 느낀다. 심형래가 이것을 깨려 한다. 심형래는 영웅이 되어선 안 되는가? 서태지는 예술이고 심형래는 토스터기인가?

심형래가 돈 700억을 거머쥔 행운의 사나이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심형래의 돈 700억은(정확은 액수는 잘 모르지만) 그가 쟁취한 것이다. 심형래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 쓰레기 영화들을 만들어 돈을 모았다. 그리하여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흥행력을 인정받았다. 그리하여 거대한 펀딩을 받았다. 이런 건 행운이 아니다.

쓰레기라는 말이 과한가? 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량유통되는 대중오락 기획물들은 거개가 다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이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거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난 한번은 이 쓰레기들을 다 끊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삶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사회생활하다보니 결국 이 거대한 난지도로 다시 돌아왔다. 마음 아픈 일이다.

예술 좋다. 예술하지 말라는 사람 아무도 없다. 난 우리 국가가 예술을 진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은 결코 예술을 키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쓰레기만을 소비하니까. 예술의 세계에 사는 듯이 보이는 이송희일 감독이 왜 뜬금없이 시장바닥 펀딩에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서로 세계가 다르다. 돈 만지는 사람이 예술 우습게 생각하는 것도 가소롭지만, 예술하는 사람이 돈 만든 사람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황당하다.

심형래와 기타노 다케시의 차이를 묻는데 이건 간단하다. 심형래는 거대한 쓰레기를 만들어서 세계적 규모의 흥행을 노리는 사람이고, 기타노 다케시는 쓰레기 안 만들고 자기 얘기해서 그 말 들어주는 사람하고만 노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 후자는 있지만 전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이런 사람 좀 있으면 안 되나?

이송희일 감독은,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스스로조차 정리가 안 되어 있다면 돈 300억을 발랐다고 해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며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 프로파겐다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을 하수상한 민족주의 프로파겐다의 계절이라고 규정한다.

번지수를 잘못 잡았다. 심형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디워>을 봤다면 그 엉성한 구조를 알 것이다. 편집이 튀고 사건이 연결이 안 된다. 게다가 이야기는 공허하며 도식적이다. 한 마디로 아무 것도 없다. 바로 이것이다. 심형래는 이야기를 버리고 90분짜리 롤러코스터를 만들려고 했다. 아름다운 이야기? 그런 게 꼭 필요한가?

<디워>를 두고 부라퀴의 움직임이 어색했다던가, 합성이 매끄럽지 않았다던가, 폭발이 빈약했다고 하면 중대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걸고 넘어지면 할 말이 없다. 세계적인 예술명작에 대고 특수효과의 완벽성을 기준으로 평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런데 그 역은 성립하는가?

이송희일 감독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하는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는 아무 것도 아니다. 도구이며 상품이며 형식이다. 그걸로 예술을 해먹는 사람도 있고, 프로파겐다로 해먹는 사람도 있고,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한국 대중의 과도한 공격성을 문제 삼는다면 그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독선적인 규정, 국가주의 강박, 심형래의 노력과 능력에 대한 폄하에는 동의하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대중의 과도한 공격성은 확실히 문제가 있긴 하다. 보는 내가 섬뜩할 때가 있다.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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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재근 님의 네이버블로그에서 퍼온 것입니다.
평소 친한 사이라서 허락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착한 친구거든요.^^
본 블로그에서는 하재근 님의 멋진 칼럼들을
<하재근의 보다 나은 세상> 테마방을 통해서 소개할 예정입니다.
by 어른이 | 2007/08/10 00:45 | 하재근의 보다 나은 세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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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우기 at 2007/08/10 06:02
아... 속이 다 후련해지는 글입니다.

머리속의 생각과 글의 일치가 정말 힘든 저로써는 정말 부러운 분이네요.

좋은 글 읽을 기회주셔서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올비 at 2007/08/10 08:01
오.. 정말 좋은 글인데요
근데 이런 좋은 글을 볼때마다 염려가 먼저 되는 것이... 또 글을 아주 대강 보고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분 또한 단순한 디워빠로 취급될까 참 걱정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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