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안수기도하는 목사의 모습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가 문제 많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2의 종교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내가 신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들어온 소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안녕'하시다. 아니 안녕하시다 못해 회춘하셔서 수구의 전위노릇까지 팔팔하게 하고 계신다. 무엇이 잘못됐나? 여러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를 장사꾼의 수완에 맡겨버린 미국판 개교회주의의 원초적 문제점을 거론할 수도 있고, 박정희식 경제모델에 발맞춘 대교회의 성장드라이브를 언급할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사회학자나 종교학자들에게 맡겨 놓자. 목사로서 한국교회의 밑바닥을 경험한 내가 우선적으로 지적하고픈 건 언어문제다. 성경의 교훈과 배치되는 잘못된 언어를 바로 잡지 않고선 개혁은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삶과 유리된 선언적.추상적 언어를 바로 잡지 않고선 개혁은 불가능하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 3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중세적 하이어라키 -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이데올로기 - 평생 걸음마 단계를 못 벗어나는 만년 초보신앙, ------------------------------------------- *** 1. 성직자와 평신도의 하이어라키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로 인해 각 교회 별로 나누어졌을 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조차 성직자와 평신도의 두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성직자 -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룩한 사람, 하나님의 사자요, 주님의 종'님' 평신도 - 죄악된 세상에서 일하다가 예배시간에만 교회에 나오는 평범한 신도들. 이런 구별 위에서 다음과 같은 말들이 당연한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 - "목사의 기도는 일반 평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집사나 장로가 드리는 기도보다 훨씬 효력이 있다." -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성직자요, 평신도는 다만 성직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로 도와주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곁에서 보조해주는 사람에 불과하다." -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목사의 잘못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어떠한 말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목사는 하나님이 직접 처리하신다." - "목사는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처럼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 일반인들이 들으면 기겁+질색할 이런 말도 안되는 사고들이 한국교회 안에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이러한 생각들이 과연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가? 성경은 과연 성직자와 평신도를 교회 내의 두 계급으로 구분하는가?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뒤져 봐도 이런 이분법 자체를 발견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성직자/ 평신도'의 이분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평신도'를 영어로 '레이맨'(layman, laity)이라고 한다. 이 말은 헬라어 '라오스'(laos)에서 온 말이다. 이 '라오스'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참조. 벧전 2:9 등등) 본디 이 '라오스'란 말은 헬라사회에서 도시국가의 시민들을 지칭하던 행정용어다. 그것이 나중에 통치자와 구별되는 의미에서 '단순한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전문화됐다. (Cf.) 라오스(laos) - 관직을 갖지 못한 일반 시민 / 클레로스(cleros) - 행정관이나 고관 그러던 것이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받지 못한 무식한 대중들'을 가리키는 말로 전락하고 말았다. (Cf.)layman - 속인, 평신도, 풋나기, 문외한 / clergy - 목사, 성직자 이러한 언어 상의 이유 말고도 또 한 가지 역사적 이유가 있다. AD. 3C경에 성례주의가 발달하면서, 이 성례를 집행할 특별한 계층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 키프리안(Cyprian)이란 사람이 구약의 제사장제도를 본떠 '성례를 집행하는 제사장직'과 '이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평신도층'으로 엄격하게 구별했는데, 이로부터 교회가 성직자 중심의 계층구조로 이어져 내려오게 되고, 그 결과 로마 교황제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에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이 '만인사제주의'를 내세우며 투쟁하여 오늘의 개신교를 이룩한 것을 우리가 잘 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언제부턴가 '만인사제주의'는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고,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기묘한 계급적 이분법이 교회 안에서 활개치고 있다. 교회는 다시금 성직자의 전유물이 되고, 평신도는 교회의 주변그룹으로 소외됐다. 예수께서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창조해내신 '오직 하나 뿐인 하나남의 백성'을 우리는 다시 '성직자와 평신도'로 두 동강을 내고 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한다. 교회를 분리시키는 '성직자 / 평신도'라는 하이어라키는 페기시켜야 옳다. 성직자는 목사로, 평신도는 성도 내지는 교인이라는 말로 대체시켜야 한다. 엄밀히 따져 보자. 목사만 성직자인가? 천만에 말씀이다. 성스러운 일, 속된 일이 처음부터 따로 구별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다 성도요, 성도가 하는 일은 모두가 성직이다. 목사나 성도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다 똑같은 제사장이다. #. 벧전 2:9 - 오직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며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다만 그 기능상 목사는 성도를 섬기기 위해서 부름받은 자라는 것이 다를 뿐. #. 엡 4:12 - 목사는 성도를 온전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스스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게 도와 준다. 목사는 교회 안에서 성도를 섬기고, 성도는 교회 밖에서 이웃을 섬긴다.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것은 성도들의 일이다. 목사는 성도들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 돕는 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오히려 성도들이라는 쪽으로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살리는 길이다. - 어른이 -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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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by TNS at 08/19 예전 글이군요... 공모.. by 흠... at 08/19 ㅎ by 엄마 at 08/17 이글을 복사해서 단 3군.. by ddd at 08/13 이대통령에게 너무나 안.. by 안영목 at 08/09 진짜 막장이네, 어떻게.. by 에구 at 08/08 ㅁ맛잇어 보이네요 위치.. by 영숙 at 08/06 와 정말 예쁘네요. 블로.. by 아톰 at 08/03 .. by 프리 at 07/24 씨발 엘프새끼들아 니네.. by 프리 at 07/24 가 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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