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능' 보수경제학이 우리 구원할 수 있나?

제학자들이 경제정책의 수립과 실행에 활발하게 참여해온 대표적 사례가 바로 미국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경제학자들은 이런저런 형식으로 현실에 깊숙이 간여해 왔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폴리페서’라는 말이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경제학 분야가 특히 그렇지만, 교수가 현실에 참여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아펠바움(B. Appelbaum)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에도 1950년대까지는 경제학자들의 현실 참여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고 합니다. 고위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면면을 보면 경제학자가 아주 적었고 변호사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군요.

이 책은 그 첫머리에서 전설적인 볼커(P. Volker)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이 젊었을 시절 뉴욕연방준비은행에서 얼마나 푸대접을 받으면서 일했는지 그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볼커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연준 이사장으로서 그 당시 미국 경제의 최대 문제였던 인플레이션을 결정적으로 제압한 공로로 거의 전설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그런 볼커가 연준에서 승진에 대한 기대도 없이 윗사람을 위한 데이터 정리나 해주고 있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볼커처럼 연준의 하위직에 몰려 있었고, 고위직은 거의 다른 전공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답니다. 은행가, 변호사, 심지어는 (아이오와의) 돼지 축산업자들이 고위직을 차지했고 경제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군요. 최장수 연준 의장직의 기록을 갖고 있는 마틴(W. Martin)은 대놓고 연준이 고용하고 있는 경제학 전공자들을 무시했다고도 합니다.

심지어는 루즈벨트(F. Roosevelt) 대통령과 아이젠하워(D. Eisenhauer) 대통령까지도 경제학자들을 무시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의회는 경제학자들을 불러 청문회를 열기도 했지만 그들의 의견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답니다. 경제학자들은 현실감각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랍니다.

이런 분위기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프리드먼(M. Friedman)이었으며, 이 책은 그의 활약상을 그리는 데 상당 부분의 지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해 세금을 깎고 정부의 지출을 줄이는 일, 규제를 줄이는 일 등 수많은 보수적 어젠다에서 그의 끈질긴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미국 정치에서 프리드먼이 미친 영향력의 심대함입니다. 그는 닉슨(R. Nixon), 레이건(R. Reagan), 부시(G. Bush) 같은 역대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의 개인교사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이 펼친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거의 전부가 프리드먼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정치는 진보의 독무대였습니다. 보수세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지요. 이와 같은 진보 일변도의 정치풍토가 갑자기 보수의 헤게모니로 바뀌고 드디어 ‘레이건 혁명’(Reagan Revolution)에까지 이르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혁명적 변화의 근저에 프리드먼과 그가 길러낸 보수 이념전사들의 활약이 있었던 것입니다.

경제학자로서의 프리드먼은 두말한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정치활동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남을 설득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의 언변은 듣는 사람을 바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나 봅니다. 학문적으로만 보면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새무엘슨(P. Samuelson)조차도 그와의 논쟁에서는 수세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니까요.

이 책에는 비단 프리드먼뿐 아니라 스티글러(G. Stigler), 슐츠(G. Schultz), 디렉터(A. Director) 같은 보수파의 거두들 얘기가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모두들 프리드먼의 시카고 대학 동료 경제학자인데, 이들이야 말로 미국 보수주의 이념의 기초를 닦은 핵심 인물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미국 사회에서 보는 감세정책, 지출축소, 규제철폐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립에 이들이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경제학자들의 시간”입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의 수립과 실행에 깊숙이 참여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라는 의미에서 이 표현을 쓴 것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아펠바움은 1969년에서 2008년에 이르는 기간을 바로 그 경제학자들의 시간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기간은 보수파 경제학자들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기간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보수파 경제학자들의 시간’이라고 표현해야 맞는 말입니다. 이 책은 그 기간 동안 과연 미국 경제와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평가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보수 경제학자들이 미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 줬는지를 평가해 보고자 한 것이지요.

시장의 자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그들의 ‘시장만능’ 이데올로기가 미국 사회의 전반적 번영을 가져온 점에 대해서는 저자도 흔쾌하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효율만을 중시한 나머지 공평한 분배를 홀대한 결과 대다수의 서민들이 번영의 과실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지적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장기간 이어져온 신자유주의정책의 결과 미국 사회는 선진국들 중 가장 분배가 불평등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시카고학파를 이끌고 있는 루카스(R. Lucas)는 성장만이 중요하며 분배를 강조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자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 주면 가난한 사람도 덕을 본다는 설교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신자유주의정책 실험의 결과 이 설교는 한낱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그들의 시간은 이제 그 끝을 맞았습니다. 시장이 만능이며 정부가 불필요하게 간섭하지 않으면 시장이 모든 일을 다 알아서 처리하게 되어 있다는 그들의 설교가 명백히 틀린 것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되었으니까요. 시장이 만능이라는 그들의 말을 믿고 규제를 줄줄이 풀어버린 결과 전 세계 금융부문의 멜트다운을 가져올 수도 있는 심각한 위기를 맞은 것 아닙니까?

이 책의 부제는 “거짓 예언자들, 자유로운 시장, 그리고 사회의 균열”(False Prophets, Free Markets, and the Fracture of Society)로 되어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시간을 주도한 보수 경제학자들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아주 간결하게 잘 정리해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시장이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그 결과는 그 예언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으니까요.

내가 그 동안 읽은 경제학 관련 책들 중 이것처럼 재미있게 읽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반 독자에게는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려면 1960년대와 70년대의 미국 정치지형에 대해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그 점이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신자유주의 이념의 태동과 확산,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준 귀결에 대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 추천하는 것입니다.

New York Times의 경제관련 사설 집필자로 오랜 기간 동안 활약해 온 저자의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에 접하는 것도 또 하나의 큰 즐거움입니다. 언론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http://jkl123.com/sub5_1.htm?table=board1&st=view&page=1&id=18722&limit=&keykind=&keyword=&bo_class=


'시장만능주의'와 '낙수효과'를 강조하는 보수경제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준구 교수가 소개한 아펠바움의 책 '경제학자들의 시간'에 그 답이 나와 있군요.

'경제학자들의 시간'은 엄밀하게는 '보수파 경제학자들의 시간'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프리드먼 등 보수학자들이 지배했던 미국의 1969년~2008년을 비판한 내용이거든요.

지금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에서 선동하는 것처럼, 보수 경제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면
당연히 그 기간 대의 미국은 '황홀한 최절정의 시간'을 구가햇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시장만능'만 믿고 규제를 줄줄이 풀어버린 결과,
전 세계 금융부문의 멜트다운을 가져올 수도 있는 심각한 파국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아펠바움이 이 책의 부제를 '거짓 예언자들, 자유로운 시장, 그리고 사회의 균열'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그 거짓예언자들은 아직도 이 땅에서 왕성하게 떠벌이고 있고요.

☞ 관련글 : [이준구] 보수언론이 전하지 않는 한국경제 진실
☞ 관련글 : '소득주도성장'으로 한국 경제 살릴 수 있나?
☞ 관련글 : 스티글리츠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옳다"
☞ 관련글 : 조선일보 노조, "낙수효과? 그거 순 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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