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첼시전서 부진했던 이유를 아십니까?

예상 외의 부진이었다. 최근의 폼과는 많이 다른, 그래서 지극히 실망스러운 경기였다. 직전만 해도 사람들은 손흥민이 또다시 날아다닐 걸로 기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엔 슛만 했다 하면 골이요, 패스했다 하면 어시스트라고 할 정도로 페이스가 좋았기 때문. 더구나 45일 전 철시를 상대로 5~60m를 치고 달리면서 쟁쟁한 수비진들을 따돌리고 원더골을 넣지 않았던가 말이다. EPL '11월의 골'로 선정된 그 골은 손흥민에겐 영광이었을 터이나 첼시에겐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다.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그래서일까. 리그컵 준결승 1차전에서 다시 만난 토트넘을 상대로 첼시의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은 철저하게 손흥민을 봉쇄.고립시키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손흥민에게 농락당했던 첼시의 간판수비수 다비드 루이즈를 빼고 그 자리에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을 투입시켰다. 물론 크리스텐센에게 맡겨진 역할은 손흥민 전담 마크였다. 그리고 감독의 기대대로 크리스텐센은 손흥민이 교체될 때까지 껌처럼 달라붙어 손흥민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과장해서 말하면, 둘이서 마치 2인3각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다.

손흥민은 최전방과 좌우를 부지런히 오가며 기회를 만들어 보려 했지만 크리스텐센의 철벽마크와 첼시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막혀 효과를 보지 못 했다. 손흥민으로 가는 패스 길목을 차단한 탓에 손흥민이 이날 공을 잡은 것은 불과 서너 차례밖에 되지 않았다. 매 경기마다 분위기를 주도하고 찬스를 만들어주던 손흥민이 묶이자 토트넘 공격은 길을 잃고 헤맸다. 토트넘은 시종 첼시 페이스에 끌려다녔다. 전반 중반에 얻은 애매한 PK 판정으로 운 좋게 이기긴 했지만, 암튼...

후반 34분 손흥민이 교체돼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첼시는 손흥민의 뒷공간 침투를 대비해 느슨하게 풀어놓았던 라인을 바짝 끌어 올리며 추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토트넘의 촘촘한 수비에 막혀 승부를 뒤집진 못 했다. 토트넘이 가까스로 이기긴 했으나 어웨이 경기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1:0 승리에 사실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첼시로서도 충분히 역전의 기회를 노려볼 수 있게 됐으니까.

경기 후 손흥민은 상대의 대인마크에 고전했던 것을 떠올리며 "이런 경기를 통해 배운다. 좋은 공부가 됐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아시안컵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작심한 듯 이렇게 말했다. "11명이 수비하면 골 넣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경기에서는 내가 있거나 없거나 큰 차이를 못 느낄 것이다." 손흥민 합류를 기대하며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인데 마침 이날 경기에서 손흥민이 상대의 밀착마크와 봉쇄에 시달린 대로 시달린 뒤에 나온 말이라 자못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어쩌면 손흥민이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집중견제를 당한 상태에서 뛰는 건 쉽지 않아요. 첼시전에서 내가 꽁꽁 몪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하나 배워 나갈 뿐이지요. 아시안컵에 출전한다고 해서 상황이 갑자기 달라질까요? 모르긴 해도 아시아팀들은 첼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해법을 모색하며 고전하겠지요.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실망할지도 몰라요. 손흥민 있으면 크게 다를 줄 알았더니 별 게 없네 하고 말이죠."

그럴 것이다. 손흥민이 EPL에서 날라다니면 다닐 수록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사람들은 손흥민이 대표팀에 합류하기만 하면 모든 게 기적적으로 달라질 것처럼 기대하고 있으니까. 아시안컵 1차전에서 약체 필리핀을 상대로 1:0 신승을 거둔 터라 그 목마름이 부쩍 심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손흥민의 가세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일 경우, 실망과 비난의 강도 또한 그에 정비례할 것이다. 손흥민은 그를 우려한 것 아닐까.

사실 수퍼스타 한 사람이 대표팀에 가세한다고 해서 그 팀이 얼마나 달라질까. 아니, 그 이전에 수퍼스터 한 사람에게만 기대하는 이런 모습이 정상적인 것일까. 손흥민보다 월등히 뛰어난 메시를 보유했음에도 아르헨티나는 러시아월드컵 예선에서 탈락 위기를 맞았다. 메시에 필적하는 호날두가 있지만 포르투갈을 세계적 강팀이라고 얘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메시 의존증, 호날두 의존증이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에 득이 되기보다는 해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이전에 포르투갈을 지도하면서 호날두를 사골국처럼 우려먹었던 벤투 감독은 다시 손흥민에 의존하고 그를 끝없이 우려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듯 하다. 필리핀 전 이후 벤투는 밀집수비에 약한 한국의 취약한 공격력을 비판하는 기자들에게 "손흥민이 중국전부터 띌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14일 맨유전을 뛴 직후 비행기를 타고 수천 키로를 넘는 거리를 날아오자마자 시차적응이나 피로를 풀 새도 없이 16일 중국에 투입시킬 생각을 피력한 것이다.

한 마디로 미친 짓이다. 선수를 혹사시켜 망가트리기로 작정한 것이라면 모를까, 선수 생명을 걱정하는 정상적인 감독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만행이자 폭거다. 피로에 찌든 손흥민을 토너먼트도 아니고 예선부터 투입시키서 무슨 재미를 볼 것인가. 손흥민 자신도 밀집수비를 편 상대에게는 벌다른 수가 없다고 앞서 말한 바도 있다. 효과도 없이 손흥민 체력만 방진시켜서 자칫 부상의 위험성만 가중시킬 수 있단 얘기다.

손흥민에게 기대하고 그를 성원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그가 뛴다고 해서 대표팀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 바르게 말하면, 갑자기 달려져서도 곤란한다. 그건 대표팀이 아니라 손흥민 원팀이란 말밖에 다름 아니니까. 한국 대표팀이 손흥민만 바라보는 '손흥민 해바라기팀', 나아가 '손흥민과 그 아이들'로 구성된 팀이기를 바라는가. 아닐 것이다. 손흥민만 있으면 절로 강팀이 되고 문제가 술술 플린다면 감독이나 코치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벤투 감독은 손흥민을 이용하기 전에 자기가 대한민국 대표팀에 꼭 있어야만 하는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한국 대표팀의 전체 스쿼드를 두텁게 하고 조직력을 강화해서 탈아시아급의 강팀으로 만들어달라고 벤투 감독에게 거액을 쏟아부은 것 아닌가 말이다. 벤투 감독은 대중국전 승리를 위해 손흥민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말에 왜 국민들이 실망하고 분노하는지 그 이유를 되새겨 보기 바란다. 손흥민은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벤투 감독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아무렇게나 굴려도 되는 소모품이 아니다.

☞ 관련글 : "중국전부터 손흥민 투입"...벤투, 제 정신인가? 
☞ 관련글 : [첼시전] 손흥민 원더골 & H/L & 관중석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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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 2019/01/10 18:28 | 문한별 칼럼(2019) | 트랙백 | 핑백(3)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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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였네ㅋ / (임요왕) ☞ 관련글 : 손흥민이 첼시전서 부진했던 이유를 아십니까? ☞ 관련글 : "중국전부터 ... more

Commented by 엑스트라 at 2019/01/12 06:05
그만큼 첼시가 이 악물었다는 예기 아닌가 싶네요. 지난번의 수모를 만회할려고 단단히 준비는 한 눈치였지만요. 손흥민한테 뚤렸다는 말은 알리, 에릭슨도 골을 넣을 기회가 더 많이 생길지도 특히 케인.
Commented by 어른이 at 2019/01/12 13:28
그렇죠. 한 마디로 손흥민이 무서웠다는 겁니다. 손흥민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간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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