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게 묻는다. 역사교과서가 ‘망언’ 수록집인가?
최근 핫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는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문제에 대해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언론인 류근일 씨가 드디어 한 말씀 하시었다. 가로되, 좌편향 교과서의 대표격으로 떠오른 금성교과서를 이참에 '학실히' 퇴출시키란다. "역사를 빼앗기면 전부를 잃기에" 자학사관이나 부채질하는 나쁜 교과서를 퇴출시키기 위해서 국민적 투쟁을 벌여야 하고, 또한 이명박 대통령도 목숨을 걸어야 한단다. 30일자 기명칼럼 <왜곡된 역사 교과서 퇴출 운동을>에서 오버이트한 소리다.

잠깐 맛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류 씨의 글은 무늬만 칼럼이지 선동이나 다를 바 없다. "교육 재난" "세뇌교육" "사이비종교의 거짓말" 등등 극한 언어로 금성교과서를 떡칠한 것으로도 모자라 "학부모들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거나 "학부모, 시민사회가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다" "왜곡된 현대사 교육 퇴출을 위한 국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야 한다" "세찬 투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대놓고 부채질하신다. 촛불집회를 그렇게 욕하더니 그런 대규모 집회라도 벌이라는 것일까?

류 씨는 심지어 학부모들을 선동하기 위해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녀들이 괴한에게 유괴당하는" 공포까지 끌어 들이는 막가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신체적인 납치만 유괴가 아니라 좌편향 교과서에 물들어 영혼이 납치당하는 것도 일종의 유괴라는 거다. 엽기가 따로 없다. "유괴란 반드시 신체적인 납치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납치하는 것이야말로 유괴 중에서도 가장 질 나쁜 유괴다." 그러면서 공포체감지수를 드높이기 위해 허접한 상황극까지 몸소 펼쳐 보이신다.

"상상해 보자. 괜찮던 아들 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 앞에 다가와 "그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왜 만들어 가지고 나라를 두 동강 냈느냐?"며 '생깡'을 부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부 청소년들은 이미 해방 후 한국 현대사에 관해 그런 '사이비 종교'의 거짓말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중략)...이런 추세를 끊어놓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건국을 '나쁜 것'으로 보는 사람들로 꽉 차 버릴 날이 오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그래서...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류 씨는 알까? 이런 논리대로 하자면, 조선일보도 납치의 원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교과서에 물드는 것보다 더 무서운 영혼납치는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찬 신문에 무방비로 세뇌되는 것이다. 그 위험은 사이비종교의 거짓말에 농락당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 폐해가 오죽 심각했으면, 촛불집회 와중에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광고주 압박운동'을 전개했을까. 필경 그들은 조선일보로 인해 무구한 영혼들이 피해보는 것을 막아보자는 순정에서 그랬을 게다. 아무렴.

칼럼 후반부에서 류 씨는 학부모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등까지 떠민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던져서라도 역사교과서를 퇴출시키는데 앞장서란다. 한 마디로 총대를 메란 얘기다. 대통령도 어르고 달래는 조선일보의 파워가 이 정도다. 그러면서 "찬반 여하간에 원칙을 위해 목숨을 건" 전임 대통령 네 명을 거론한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이 그들이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왜 일까? 노 전 대통령은 무원칙한 사람이라서? 정말?

▲ 조선일보는 교과서포럼 창립소식을 2005년 1월 26일자 1면톱으로 보도했다.

다시 교과서 이야기로 돌아가자. 상기한 칼럼에서 류 씨가 국민운동을 벌여서라도 퇴출시켜야 한다고 지목한 대상은 "자기 나라 건국을 '죄업'인 양 비틀어 보이는" 세칭 친북 좌편향 교과서다. 조선일보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학사관'으로 가득한 나쁜 교과서다. 류 씨와 조선일보의 주장은 이런 교과서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건국을 찬양하는 '긍지의 사관'이 자랑스럽게 박혀있는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에서 낸 대안교과서를 심자는 것이다.

아마 웬만한 분들은 다 아실 게다. 교과서포럼에 어떤 인사들이 관여하고 있는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망언의 주인공인 안병직과 이영훈 두 콤비도 거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계신다. 한 명은 공동대표로, 또 한 명은 고문으로. 두 사람은 일제 식민지배를 통해 근대화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창자들일 뿐더러, 전 세계가 규탄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제 강제 동원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자 공창제였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교과서포럼의 이런 시각들이 대안교과서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폭력적 수탈을 부정하고 "근대적 재산제도와 시장경제의 원리에 준하는 것"이었다고 강변하는가 하면, 식민지시대에 도입된 일본의 자본과 기술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되고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식의 서술이 그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등, 대안교과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일제와 관련된 것들만 몇 개 따지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조선일보가 교과서포럼의 이런 주장에 대해 이전 사설에서 "망언"이라고 이미 낙인찍은 바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2005년 3월 21일자 사설을 통해 "일본의 침략사를 왜곡 미화한 후소샤판 교과서를 포함해 2005년판 중학 역사교과서들에 대한 일본 문부성의 검정 결과 발표가 보름 남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러한 일들을 막후에서 부추기고 있는 현 일본 자민당과 내각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몇몇 정치인들을 이렇게 강력히 규탄했다, 들어 보시라.

"틈만 나면 “창씨개명은 한국인이 원한 것”이라느니 “한국은 식민지 시대를 통해 근대화됐다”느니 망언을 일삼으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활동을 부추긴 것이 바로 이들이다. 나카야마 문부상 자신이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회장 출신으로 “이번 교과서에는 종군위안부, 강제연행 같은 말이 줄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이 일본 교육의 수장으로서 교과서 검정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을 지켜본다>)

보셨는가? "한국은 식민지 시대를 통해 근대화됐다"는 말은 '망언'이란다. 조선일보 사설, 곧 조선일보란 신문사의 공식적인 주장이 그렇다. 그럴진대 '식민지 근대화론'을 전개하고 '위안부 공창제'를 설파하는 교과서포럼의 주장 또한 어떤 식으로 둘러대든 망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그 언론인 류 씨가 하는 짓들을 보라. 대한민국 정부가 검증한 멀쩡한 교과서를 퇴출시키고 민족의 가슴에 대못질을 일삼는 망언집단의 망언교과서를 청소년들 머리에 세뇌시키잔다.

이게 말인가 소인가. 이게 제 정신 가진 자의 할 짓인가. 자기에게 불리한 기억을 '자학사관'이라 하여 교과서에서 지우려고 하는 점에서 일본의 '새역모'나 이 정권의 교과서포럼이나 하등 다를 바 없는데도 교과서를 왜곡한다며 일본만 손가락질하고, 일본 극우들의 움직임을 비판하는 듯 하면서도 그들이 들으면 쌍수를 들고 환영왈 내용을 주장하는 교과서포럼을 적극 옹호하고, 나아가 제 입으로 '망언'이라 규정한 내용을 교과서포럼이 떠벌리는데도 그로써 교과서를 만들자 하고...

묻는다. 역사 교과서가 망언 수록집인가? 같은 망언이래도 일본이 내뱉으면 비판받을 것이 되고, 교과서포럼이 내뱉으면 칭찬할 것이 되는가? 그래서 멀쩡한 교과서 폐기시키고 이런 매국적인 내용을 교과서에 담으라고 학부모들을 선동하는가? 들고 일어나라고? 청소년들이 좌편향 교과서에 물들어 영혼납치 당할까봐 걱정이라고? 그래서 망언을 주입시켜 민족정체성을 망각한 친일분자로 만들자는건가? 그래야만 친일신문의 어둔 과거가 가려지는가? 입이 있으면 답할지언저! (2008.10.01)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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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서프>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어른이 | 2008/10/01 12:46 | 문한별 칼럼(2008)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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