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아 터진 땅에 '우리'가 어디 있고 '남'이 어디 있으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넘의 지역감정....! 개혁과 진보의 발걸음 가로 막아 늘상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그도 모자라 삼천리 금수강산을 증오와 죽임의 독기로 가득 채운 장본인....!

그를 제거하지 못하고서 어찌 이 땅의 미래를 논하며, 그를 해소하지 못하고서 어찌 이 민족의 통일을 말하리오.

본디 지역감정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만국공통의 소산, 제 고장을 사랑하고 아끼는 소박.질박한 인간본연의 정서에서 발원한 것 아니더냐. 따라서 바르게만 이해된다면 외려 권유하고 장려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지역감정은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니, 제 고장이 잘 되는 것보다 남 잘못 되는 데서 더 큰 만족을 누리고 옹졸한 마음으로 서로 불행의 크기를 비교하며 다투는 흉물로 변하고 말았던 것.

하여 이르기를, "저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오게 해선 안돼!" 하고, 또 이르기를, "저쪽 사람들하고는 절대로 상종해선 안돼!" 하며, 다시 이르기를, "저쪽 놈들이 잘 되면 우린 다 강물에 빠져 죽어야 돼" 한다.

통제라! 행복에는 둔감하고 불행의 성감대만 비상하게 발달한 민족이라 그러한가. 아님, 남북으로 허리 나뉘어 더욱 좁아진 척박한 땅에 거하다 보니 그리 되었던가!

최랑이라는 조선 선조 무렵의 여인이 있었다. 동시대의 문신 鄭之升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그만 헤어져 마침내 병들어 죽었다. 그녀가 죽기 전 지승을 위해 지어 부친 시가 이러하였다.

.... 슬퍼라, 동서로 서로 길이 달라(戚戚東西路),
.... 장래 기약하기 어려움을 내 알지만(終知不可期),
.... 그러나 뉘 알랴, 한 번 되돌아 보면(誰知一回顧),
.... 더불어 둘의 사랑이 뜨겁게 불타오를지(交作兩相思).


동서로 길이 어긋나기가 오늘날 경상도, 전라도의 처지와 흡사했던가 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장차 화합하기 어려움 또한 두 지역의 실정과 닮았던가 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사뭇 암담하고 또한 절망적이다.

그러나 이 시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 속에 시인의 비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요, 만날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암담한 환경 속에서도 끝내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의 애절한 갈망이 행간 마디마디 보석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노래한다. 비록 헤어져 있어 다시 만나기 어려움을 내 모르는 바 아니나 그러나 장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 혹시라도 나의 염원이 하늘에 닿아 사랑하는 님과 뜨겁게 포옹할 수 있는 그 날이 기적처럼 주어질런지 뉘 아는가, 하고....!

- 현실에서 어려우면 꿈에서라도....
- 이승에서 못만나면 저승에서라도....

아, 죽음 앞에서도 불타오르는 시인의 사모곡이 사뭇 가슴 저리지 않은가. 가려고 맘만 먹으면 한나절 길도 안되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동.서로 나뉘어 서로 헐뜯고 싸우는 우리네 야박함이 절로 한스럽고 서글프지 않은가.

간교한 정치인들이 제 한 몸 영화 누리자고 이 땅을 이리 찢고 저리 찢고, 미련한 국민들은 원수진 일도 없으면서 저들 이끄는대로 생각 없이 놀아나니 입으론 화합을 외치면서 몸으론 분열을 재촉하는 작태가 통분하기 그지 없다.

.... 물 들인 듯 강물 푸르른데(江水綠呂染)
.... 하늘끝 또 봄이 저문다.(天涯又暮春)
.... 오다가다 우연히 술잔을 나누다 보니(相逢偶一醉)
.... 모두가 한 고향사람이나 다름 없도다.(皆是故鄕人)


조선 숙종 대의 문신이요 학자인 허목(許穆)이 지은 시다. 이 지방, 저 지방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드는 강가 어느 주막에 앉아, 모르는 이들끼리 술잔을 주고 받으니 그 정겨움이 고향사람 이상이라는 내용이다.

과연! 비좁아 터진 땅에 '우리'가 어디 있고 '남'이 어디 있으리오. 생긴 것, 말하는 것 같으면 다 형제요, 친척인 것을....! 인생사 무릇 정들이기 나름 아니겠는가.

정 들면 타향 사람도 고향 사람이나 다를 바 없고, 정나미 떨어지면 고향 사람도 타향 사람과 진배 없다. 그런 즉, 사는 곳을 따져 차별하고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일이다.

지금 비록 동서로 갈리어 서로 원수 쳐다 보듯 하는 우리네 꼬라지가 먹구름 가득 뒤덮인 어둔 하늘 같아서 답답하기 그지 없으나 그러나 뉘 알랴, 우리가 모르는 새, 동.서가 그동안 닫아 두었던 마음문을 활짝 열고 서로 되돌아 보는 그런 날이 와서(지금으로선 차마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둘의 사랑이 다시 뜨겁게 불타 오를지....! 이 땅에도 그런 기적이 찾아 올런지....!

이보게,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같이 어울려 술 한 잔 하는 건 어떤가? 기왕이면 허물 없이 어깨동무 하며 목이 터져라 노래하는 것도 좋겠지.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 쳐야지...." (2004.10.05)



- 어른이 -
by 어른이 | 2004/10/05 14:20 | 문한별 칼럼(2004) | 트랙백 | 핑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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