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전 대패보다 더 충격적인 허정무 감독 인터뷰
최악이다. 아르헨티나 전 1:4 대패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시합은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 그리고 최선을 다 해도 실력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아르헨티나 전에 승리를 기대한 건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허정무 감독 입에서 자신을 책하는 말 대신 선수를 탓하는 말만 나왔다는 거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직후 허정무 감독이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두 가지 중요한 말이 나왔다. 첫째는 염기훈이 찬스에서 골을 넣어줬다면 경기 흐름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고, 둘째는 첫날 경기(그리스전)에서 차두리의 플레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범석을 출전시켰고 오범석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다.

이 날 경기를 보신 분들은 다 느끼셨겠지만,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염기훈과 오른쪽 풀백으로 나선 오범석은 공수에서 실수를 연발했다. 염기훈은 불필요하게 공을 끌다가 뺏기기 일쑤였고, 설상가상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었던 결정적 찬스마저 날려 버렸다.

그런가 하면 오범석은 자신이 맡은 우측 공간을 완벽하게 '메시 해방구'로 내주었다. 오범석의 파울로 시작된 첫 골에서부터 오범석의 위치선정 미스로 내준 마지막 골까지 한국팀이 허용한 4골 모두에 오범석이 관여'(?)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런데도 허 감독은 이 둘을 교체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갔다. 경기를 지켜보던 축구팬들 거의 모두가 한국팀의 플레이를 오염시키는 '오.염' 두 선수의 교체를 기도했지만 그러나 허 감독의 고집 앞에선 이런 간절한 기도조차 무력했다. 그리고 1:4 패배.

사정이 이렇다면 경기 결과에 대해 적어도 선수를 탓하는 말은 안 나왔어야 했다. 싫든 좋든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것인데 이제 와서 누굴 탓할 것인가. "염기훈이 결정적 장면에서 실수를 해서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고? 그건 염기훈만의 잘못이 아니라 '교체 0순위'로 꼽힌 염기훈을 제때 교체하지 않고 풀타임을 뛰게 한 허 감독의 탓이 더 크다.

오범석을 싸고 돌며 1차전의 '숨은 MVP' 차두리를 깍아내린 두 번째 말도 어이 없긴 마찬가지. "오범석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그런 식이라면 도대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선수가 어디 있는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라면 누구든 최선을 다하게 마련이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걸 따져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오범석이 거듭된 실수로 많은 골을 내주긴 했지만 그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선 토를 달고 싶지 않다. 다만 최선을 다 했어도 결과가 안 좋으면 선수를 교체해서 분위기를 일신하는 게 감독의 역량이다. 밑빠진 독처럼 오른쪽 수비가 계속 털리는데도 수수방관하다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쉴드쳐주는 게 다가 아니란 얘기다.

사실 그리스전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 차두리 대신 오범석을 기용할 때부터 조금은 우려스럽긴 했다. 차두리만 빼고 1차전 스쿼드를 그대로 밀고 나간 것이라서 그 의외성이 더욱 돋보인 탓이다. 그래도 출전선수 구상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에 속한 일이라 잘 되기만을 바라고 숨 죽이며 지켜봤다.

그렇게 해서 결과가 안 좋게 나왔으면 담담하게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게 감독으로서 올바른 처신일 터다. 그런데 보라. 오범석을 기용한 자신의 '실수'를 합리화하기 위해 애먼 차두리까지 끌어들여 "첫날 경기에서 차두리의 플레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범석을 출전시켰다"고 강변하신다. 이게 말인가 소인가.

아르헨티나에서 4골을 헌납하는데 일조한 오범석의 플레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고, 외국 언론과 국내 축구팬들이 'MOM'급 활약을 펼쳤다고 격찬한 차두리의 플레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니, 과연 허 감독과 우리가 같은 경기를 본 것인지 어안이 벙벙해진다. 아니면, 허 감독의 시선이 워낙 독보적이고 천재적이라 세계 언론조차 이해를 못하는건가?

물론 차두리가 그리스전에서 흠 없이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꼼꼼히 찾아보면, 패스미스가 잦았다든지 수비가담이 늦었다든지 하는 등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이게 "마음에 들지 읺았다"면, 아르헨티나전의 '전범'으로 불리는 오범석의 플레이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경기 직후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아르헨티나전 대패는 차두리 대신 오범석을 집어넣어 수비에만 치중한 경기를 펼친 허정무 감독의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일제히 타전했다. 패배 책임을 선수에게 전가하는데 날래고 제 탓에는 둔한 허 감독 귀에 이런 말이 들리기나 할까. (2010.06.18)




- 虛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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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글입니다.
by 어른이 | 2010/06/18 10:37 | 문한별 칼럼(2010)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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