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평화국가'의 이라크 파병은 왜 위헌 각하했나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습니다. 음지에서 잠자고 있던 관습헌법까지 깨워가며 신행정수도 이전을 물먹인 헌법재판소의 소이가 말입니다. 깨놓고 말해서, 헌법재판소가 성문헌법 대신 생경하기 그지 없는 관습헌법을 부러 호출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문헌법만으론 신행정수도 이전을 막을 명분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 아닙니까? 헌법 갖고도 충분했다면 굳이 관습헌법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었을 테지요.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이건 아이큐가 세자리 숫자만 돼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논리문제입니다.

눈 밝은 분들은 감잡으셨겠지만,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불온한’(?) 추측도 가능해집니다. “헌법재판소는 최종 결정 이전부터 이미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를 막기 위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성문헌법 대신 관습헌법을 부러 끌어 들인 것이다”라고(아니면 말고...). 신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10.21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소이연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것 말입니다. 거듭 말하는 거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 한다”는 말이 분명히 못박혀 있고, 또 5조 1항은 “국제평화를 유지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그럴진대 미국의 동맹군으로서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한 노무현 정부는 헌법파괴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이라크공격이 불의한 침략전쟁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뉘 있겠습니까? 이라크를 침략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내놓은 명분들이 거짓되고 조작된 것이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이라크파병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그 성격상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로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하므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고 우리 재판소가 사법적 기준만으로 이를 심판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구차한 논리로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사건번호: 2003헌마814, 사건명: 이라크파병 위헌확인, 선고날짜: 2004. 4. 29 자료파일).

명명백백하게 성문헌법을 위반한 이라크파병 건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라고 은근슬쩍 대통령에게 떠밀고 또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하다”고 파병결의안을 통과시킨 국회에 책임을 떠넘겨 사법적 심판을 ‘자제’한 헌법재판소가, 역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한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유독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고, 이름조차 생소한 관습헌법이란 구원투수를 등장시키면서까지 이를 심판, 단죄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신행정수도이전은 나라의 기틀을 바꾸는 워낙 중차대한 문제라 투표를 통해 국민의사를 직접 묻는 절차가 필요해서? 그러면 이라크에 3000여명의 군인들을 침략자 미국의 동맹군으로 파병하는 문제는 워낙 가볍고 사소한 것이라서 민의의 소재를 확인할 생각도 못하고 서둘러 각하시켰답니까? 이라크파병 건은 기천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대한민국이 유구한 역사 그대로 평화유지세력으로 남느냐 침략자의 편에 서느냐를 결정짓는 엄청난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이 조선시대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서 항구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평화적 입장을 고수, 천명해 온 것을 헌법재판소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국민이면 누구나 인지하는 확고부동한 사실입니다. 그렇기로 헌법 전문에까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염원을 삽입해 넣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확고한 전통이 이라크파병 건으로 붕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평화의 나라 대한민국이 온 세계에 침략자 미국의 허수아비로 낙인찍힐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논리대로라면 이에 대해서도 당연히 관습헌법에 위배되므로 ‘위헌’이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성문헌법을 명백히 위반한 이라크파병 건에 대해서는 모른 체 눈을 감고, 성문헌법에서는 위반사실을 찾을 수 없는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불문헌법까지 끄집어 들여 심판을 강행하는 이중적 처신을 보인 데 대해 나는 크나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정의로워야 할 헌법재판소가 이런 식으로 갈짓자 걸음을 걸을진대, 어느 국민이 헌법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지키려 하겠습니까?

나는 이러한 이유로 신행정수도 이전을 물먹인 헌법재판소의 순수성을 의심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눈감고 넘어가는 직무유기를 범했고, 당연히 기각시켜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사법적 단죄를 내리는 월권행위를 범했습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자신들의 월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음지에서 동면하고 있던 관습헌법까지 끄집어 들이는 무리수를 범했습니다. 올곧은 법치사회를 염원하는 이로서 어찌 이를 가벼이 넘길 수 있겠습니까? 헌법재판소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로서 이를 어찌 범상히 넘길 수 있겠습니까? (2004.10.25)



- 어른이 -


by 어른이 | 2004/10/25 10:34 | 문한별 칼럼(2004)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iandyou.egloos.com/tb/262596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11/03/30 15:22
비공개 덧글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언어는 '지금' '여기서' 화육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장의 언어로..
by 어른이 2007 이글루스 TOP 100
Calendar
카테고리
공지사항
문한별 칼럼(2019)
문한별 칼럼(2018)
문한별 칼럼(2017)
문한별 칼럼(2016)
문한별 칼럼(2013)
문한별 칼럼(2012)
문한별 칼럼(2010)
문한별 칼럼(2009)
문한별 칼럼(2008)
문한별 칼럼(2007)
문한별 칼럼(2006)
문한별 칼럼(2005)
문한별 칼럼(2004)
문한별 칼럼(2003)
문한별 칼럼(2002)
문한별 칼럼(2001)
문한별 칼럼(2000)
문한별 칼럼 BEST
-----------------
한국 개신교는 지금...
교회개혁을 위한 묵상
짧은 설교
성경 강해
성경공부(강의) 연재
한자로 풀이한 성경
-----------------
한별의 시편
살아가는 야그
안티조선 1인시위(2001)
먹는 즐거움
[중드] 후궁견환전
-----------------
촛불혁명 & 적폐청산
2017 제19대 대선
2019 기해왜란
문재인 정부(2017~22)
-----------------
Politic issues
Social issues
crazy media
today's cartoon
all that sports
laugh with me
and so on....


최근 등록된 덧글
기대해 봅니다. ^^
by 어른이 at 09/20
분명 정의로운 사회를 ..
by 퀴벨바겐 at 09/20
훌륭하네요, 님은 이동..
by 어른이 at 09/19
저도 예전 다른 블로그에..
by 여우 at 09/19
최우석, 역성혁명 / 정치..
by 어른이 at 09/14
그렇군요. 오해한 모양..
by 어른이 at 09/14
덧붙이자면 저는 두번째..
by 최우석 at 09/14
전라도를 욕하는 글도,..
by 어른이 at 09/14
여성은 보호받아야 되지..
by 어른이 at 09/14
한국전쟁특수와 미국의 ..
by 역성혁명 at 09/14
가 볼 만한 곳...


네오이마주
포토로그

바람 불어 좋은 날...
이글루링크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