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와 조선일보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대통령은 조선일보가 존경하는 몇 안되는(?) 인물 중의 하나다. 2001년 9월 10일자 '복없는 국민'이란 제하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만델라를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소개하며, 그같은 영웅 하나 갖지 못한 우리나라 국민들을 가리켜 "복도 되게 없는 국민"이라고 조소했다.

조선일보의 비아냥처럼 우리나라 국민들이 "복도 되게 없는 국민"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만델라가 존경받을 만한 세계적 위인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는 "이 시대 민주화 투쟁의 화신"으로서 "소수 백인에 의한 흑인 인종차별 정책을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으로 27년이나 투옥되었으나 끝내 승리하여 전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조선 사설, 서울에 온 만델라, 1995.7.8)으며, 집권한 후에는 "극심했던 인종차별의 나라를 흑인 주인의 새 나라로 만들면서 백인들에 대한 보복을 금지하고 평화를 지켜낸"(조선 사설, 복없는 국민)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만델라가 금세기 최고영웅으로 대접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여기에 몇 가지 상찬을 더한다. 조선일보 류근일 주필에 의하면, 만델라는 "권력의 나쁜 속성에서 벗어난"(류근일칼럼, 만델라가 아쉬운 까닭, 1999.6.12) 예외적인 인간이요,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자신의 시각과 다른 역의 진리에 대해 늘 마음을 열어놓고 있었"(류근일칼럼, 자살골 정국, 1994.11.27)던 성숙한 인간의 전범이다.

"감옥생활에서 내가 가장 염려한 것은 나의 생각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딱딱하게 얼어붙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새로운 시각들에 대해 마음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것이 색다른 것이라거나 내 생각과 다른 것이라 해서 배척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늘 우리의 기존의 신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따져 보곤 했다. 그 덕택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진화(evolve)할 수 있었다.('자살골정국'에서 재인용)"

이런 만델라가 그러나 대이라크전을 서둘고 있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 맞서 싸우는 거인 만델라의 모습을 조선일보 지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델라는 최근 미국의 대이라크전이 "이라크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얻기 위한 것"이며, "이스라엘 또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나 미국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방치되고 있다"(2003.1.31, 연합)고 미국을 강도높게 비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선일보에 의해 철저히 차단됐다.

그는 이전에도 미국이 무슨 짓을 하든 "유엔 내에서 행동하고 유엔에 구속받아야 한다"거나 "미 행정부가 국제사회의 지지없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이는 유엔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2002.9.2, 연합)고 거듭 경고했고, 심지어 "미국은 자신만이 세계의 유일 강국이라고 생각하면서 '위험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을 강력히 비난해야 한다. 한 나라가 전체 세계를 협박하고 있는데도 세계 지도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2002.9.17, 연합)고까지 주장했지만 이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지면에서 계속 추방당했다.

넬슨 만델라의 84회 생일까지 시시콜콜하게 보도하는 조선일보(2002.7.20)가 오만한 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하는 영웅적인 만델라의 모습은 왜 보도하지 않는 걸까?

기사거리가 되지 않아서? 아님, 인류의 희망이었던 그가 갑자기 보잘 것 없는 범부로 전락해서? 그도 아님, '문명국' 미국을 비판하는 그의 말이 백인들을 포용하는 만델라의 평화적인 이미지와 안맞아서? 설마, 조선일보가 신앙하는 미국에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해서 부러 입막음한 건 아니겠지?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 해야 겠다.

남아공의 '아파르트 헤이트'에 맞서 싸운 만델라와 미국의 패권을 경계한 만델라는 본디 다르지 않다. 침묵하는 전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미국의 협박에 굴복하지 말라"고 외친 그의 사자후는 "자유와 평등과 민주사회라는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1964년 만델라가 종신형을 선고받은 재판에서 최후진술한 말 중에서 '복없는 국민'에서 재인용)는 그의 불굴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찌 이를 둘로 나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조선일보는 나뉠 수 없는 이것을 둘로 나누어 과거의 만델라는 선전한 반면 현재의 만델라는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했다. "자신의 시각과 다른 역의 진리에 대해 늘 마음을 열어놓고 있었다"며 만델라의 진화(evolve)된 인격을 칭찬하던 조선일보가 "자사의 시각과 다른 역의 진실"을 만델라가 설파했다 하여 그를 애써 고립시키려는 모습이 보기 민망하다.

이런 신문지를 언론인 냥 보고 살아야 하니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선일보 말마따나 정말 "복이 되게 없는 국민들"이 아니고 무엇이랴.(2003.02.05)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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