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그 참을 수 없는 논리의 가벼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을 우리는 신뢰하지 않는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사람을 우리는 또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신용할 수 없는 사람 혹은 간사한 사람이라 부르며 대인관계에서도 가능한 한 멀리하려 애쓴다.

일관성 있는 말의 중요성이 이와 같다. 사람과 사람의 사사로운 관계에서도 사정이 이러하거늘 하물며 사회의 공기(公器)라 불리우며 정론직필(正論直筆)로 그 본분을 삼고 있는 언론의 경우에는 오죽 할까.

어떤 위협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할 말은 한다"는 신문이 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 입으로 내뱉은 말을 변개하지 않는 선비의 직언을 전통으로 삼는다는 신문이 있다. '불편부당'을 사시(社是)로 내세우며 스스로 대한민국의 으뜸가는 정론지라 자부하는 신문이 있다. 바로 조선일보 이야기다.

7월 중순경, 미 하원의원 8명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상황에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었다. 그때 조선일보는 <美의원의 편지와 사대주의>라는 제하의 사설(2001.7.19)에서 "미국 일부 의원들이 상황 파악을 잘못하고 있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낸 민주당 의원들에게 이렇게 통박했다.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운운한 것도 군사정권들이 걸핏하면 외국의 인권시비에 대해 『한국적 특수상황을 도외시한…』 운운하던 것과 오십보 백보다. 외국인들이 모르긴 왜 모르는가? 눈이 있고 귀가 있는 한 오늘날과 같은 좁은 세계에서 지구촌 구석구석의 그 어떤 음모나 의혹도 오래 장막뒤에 가려질 수는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그 하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눈이 있고 귀가 있는 한 외국인들도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뻔히 안다던 조선일보의 주장은 그러나 그로부터 한달 보름 후, 새로 부임하게 될 허버드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21세기에 들어 한국은 더이상 보안법 같은 것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을 때 극적으로 뒤집어진다.

"우리는 다만 그가 비록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라도 아직 주재국에 부임도 하기 전에 민감한 문제를 언급할 만큼 한국의 상황을 잘 아는 형편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근무한 적이 없다.... 그런 그이기에 많은 보수적 한국인들이 한국체제의 존폐가 걸려 있다고 믿고 있는 보안법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에 좀더 신중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가 한국에 와서 시간을 갖고 국가 보안법을 둘러싼 한국 내의 여러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이 왜 지난 수십년간 끈질기게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대남공세의 양 축으로 삼아왔는지에 대해 충분한 공부를 해주기 바란다. 그런 뒤에 ‘보안법과 한국과 21세기 ’에 관한 얘기를 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사설, <허버드 대사의 '보안법 觀'>, 2001.09.01)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조선일보의 간사함을 이보다 더 어떻게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호.불호(好.不好)와 유.불리(有.不利)만을 따라 대책없이 춤추는 논리의 가벼움을 이보다 더 어떻게 사실적으로 증거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는 열병처럼 안티조선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정 신문을 타겟삼아 반대운동을 펼치는 이런 모습은 세계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한국적 현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정권의 홍위병"이니 "언론탄압"이니 하며 근거 없는 말로 공박하기 전에 이러한 운동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왜 전국적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지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안티조선은 신뢰를 잃어버린 신문에 대한 시민의 거부선언이요,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간사한 언론에 대한 준엄한 응징이다. 조선일보는 안티조선을 탓하고 비난하기 전에 이제라도 원인제공을 한 당사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진솔하게 인식하고 바른 언론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할 말은 하는 신문", "굴하지 않는 신문"이라는 낯뜨거운 광고문구는 그런 연후에 해도 늦지 않다.(2001.10.06)

[사설] 美의원의 편지와 사대주의(2001.7.19)
[사설] 허버드 대사의 '보안법 觀'(2001.9.1)




- 어른이 -

by 어른이 | 2001/10/06 10:35 | 문한별 칼럼(2001)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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