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지율 스님의 단식에 침묵하는 까닭?
호랑이가 인터넷으로 채팅하던 시절, 그러니까 2001년 8월 23일에 '김영삼의 입'으로 널리 알려진 한나라당 박종웅 전 의원이 “김대중 정권이 언론 대학살극을 펼치면서 민주주의 존립기반을 짓밟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데 분노한다”는 성명을 내고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 '사건'이 있었드랬습니다.

"정부의 언론 탄압 중단과 언론사 대주주 즉각 석방"을 명분으로 내걸고 단식 농성에 돌입한 박 전 의원의 하는 짓이 예뻐보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조선일보는 자사 지면을 이용해 전 국민에게 박 전 의원의 단식실황을 라이브중계하는 파격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지요.

- 언론 탄압 중단 요구 박종웅의원 단식농성 (8.24)
- 단식농성 박종웅의원에 격려방문 잇달아 (8.25)
- 만물상 (8.25)
- 비판필진 인사조치 요구 정부서 조선·동아 협박” 단식 박종웅의원 성명 (8.27)
- 박종웅의원 ‘언론탄압 항의단식’ 6일째;김태화목사등 4명 합류 (8.29)
- “독재국가서만 언론사주 구속”;YS, 단식 박종웅의원 격려 (8.30)
- 박종웅의원 지구당원들 시위 야 비대위도 “언론압박 말라” (8.31)
- 박종웅의원 단식 9일째 “목숨 걸겠다” (9.1)- 야 언론비대위 ‘동조단식’ (9.3)
- 만물상 (9.4)
- 박종웅의원 단식 보름째 (9.7)
- “한국, 언론탄압감시국 지정 민주주의 미개국으로 전락” 단식 16일째 박 의원 (9.8)
- 야언론국조특위 단식 격려 (9.10)- 박종웅의원 단식 20일째 입원 (9.12)


이 정도 언론의 관심이면 단식도 한번 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암튼 박 전 의원은 한때 '목숨 걸고 끝까지 해 보겠다'고 호기를 부려보기도 했지만 그러나 단식 23일을 자랑하는 자칭 '신기록 보유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만류를 빌미삼아 단식 20일 만에 못이긴 척 슬그머니 자리를 접고 말았습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명한 말씀 한 마디가 있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요. "오래 굶으면 죽는다"라는....

지지난해 11월,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가 '구국의 일념 하나로' 목숨을 건 대단한 단식을 선보였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때에도 자사 지면을 이용해 최 전 대표의 단식투쟁을 세세하게 라이브중계하기에 바빴습니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뉴스속의 의학'(2003.12.3)코너까지 만들어 (최 전 대표의) 단식의 무서움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지면 사정상 기사목록을 여기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시간 나시는분들은 '검색' 란에 '최병렬 단식'을 쳐 보세요. 그러면 연세대 모 교수가 쓴 "단식으로 누워있는 최 전 대표의 사진을 보고 마하트마 간디를 연상했다"는 류의 개그성 글에다, 김수환 추기경이 최 전 대표를 위로 방문해 "공감을 표했다"는 등등 읽는 이의 실소를 자아내는 재밌는 '꺼리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조선일보는 웃기 위해서 읽는 신문 아닙니까?

각설하고,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인정(人情)과 휴머니티의 결정판 조선일보가 '목숨을 거는 단식'에 보이는 관심은 보통이 넘습니다. 단식 실황을 중계방송하듯 보도하는가 하면, 단식의 치명성을 의학적으로 자세히 분석.설명하고, '만물상' 칼럼 등을 통해 "건강을 해치는 단식은 이제 그만하라"고 읍소하는 고마운 신문이 이 세상에 조선일보 말고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요. 정치하는 인간들의 건강을 이렇듯 따스하게 챙기는 조선일보가, 10일 내지는 20일 단식하고 곧장 영양주사 맞는 정치인들의 '웰빙단식'은 시시콜콜하게 중계하는 조선일보가, 정작 죽음을 각오하고 90일째 음식을 끊고 있는 천성산지기 지율 스님의 동정에 대해서는 왜 모른 체 입을 다물고 있는지 그 이유를 나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가 정치인이 아니라서? 그러나 민노당 김혜경 대표가 '파병철회'를 외치며 8일 단식 끝에 탈진했을 때 조선일보가 그걸 '뉴스브리핑'으로 간단히 처리한 걸 보면 정치인이라고 해서 꼭 그런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아, '언론탄압 중단'(박종웅)이나 '청문회 수용'(최병렬) 등 조선일보가 선호하는 주제를 갖고 단식해야 관심을 가져준다구요? 그런데 '환경보호'도 조선일보가 틈만 나면 입에 달고다니는 주제가 아니던가요?

조선일보는 '북한산 털보'란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차준엽 씨가 지난 91년 800년된 방학동 은행나무를 지킨답시고 무려 8일을 단식했을 때, '북한산 털보 의 생명사랑'이란 제하의 사설(1991.4.23)까지 마련하여 "우리는 또 한 사람이 한 은행나무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진심을 마음속으로 공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습니다. 감동적인, 너무나 감동적인 사설의 한 대목을 들어 보세요.

"우리는 그가 이 나무를 단순히 오래된 나무만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시민에게 자연에 대한 사랑과 외경을 불러 일으키게 한 북한산 생태계 역사의 산 증인으로 평가한 점을 중시하며, 동시에 "생태학적 보호대책 없이 인간의 편리함만을 위해 자연파괴를 일삼는 현대 문명에 대한 시민적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한 그의 속깊은 뜻을 높이 평가해야 하리라고 본다.... 북한산 털보의 은행나무 사랑은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자연에 대한 사랑을 호소한다. 북한산의 자연을 지키기 위한 그의 외로운 노력은 결국 생명을 사랑하는 서울 사람들, 우리 국민들의 가슴속에 생명사랑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리라고 믿어진다."

어떻습니까? '북한산 털보'가 지키고자 하는 은행나무 하나에서 '자연 사랑' 내지는 '인간사랑'의 속뜻을 읽고 나아가 애오라지 편리함만을 위해 환경파괴를 일삼는 현대문명의 위기까지 간파해내는 조선일보의 안목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생태계를 생각하는 조선일보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이러합니다. 그렇기로 1993년부터 '조선일보 환경대상'까지 제정하여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일 테구요.

이렇듯 환경보호에 애틋한 조선일보라면, 더욱 자연사랑을 넘어 인간사랑에까지 마음을 쏟는 조선일보라면, 잠깐의 편리만을 앞세운 무차별한 개발로 파괴되어가는 천성산 생태계를 살리고자 목숨을 걸고 단식하고 있는 지율 스님에게 최소한 눈길이라도 한번 던져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조선일보는 어인 일인지 지율 스님에게 무관심과 외면으로만 시종했습니다. 조선일보만 보는 독자라면 스님이 단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조선일보를 검색해 보세요. 스님의 이름은 법정소송과 관련해서만 어쩌다 등장합니다. 단식과 관련하여 박종웅. 최병렬 양씨에게 던졌던 건투성 기사나, 환경투쟁과 관련하여 '북한산 털보'에게 헌사했던 예찬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래도 없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에 지율 스님의 단식이 언급된 것은 2004년 8월 28일자 "천성산 터널 시비 언제까지"가 유일무이합니다. 이 사설에 지율 스님의 이름이 딱 한 번 등장합니다. 2심 소송이 진행 중인데 "그 와중에 지율 스님이 또 단식을 하면서 공사는 소송과 관계없이 중단돼 버렸다"는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하긴 천성산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환경단체들의 투쟁을 "자기들이 이겨야만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고 비아냥거리는 신문이니 능히 그럴 만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북한산 은행나무 한 그루 앞에서 '생명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하던 조선일보가 극심한 파괴에 직면한 경남의 천성산을 대해서는 느닷없이 귀머거리로 행세하는 까닭을 난 알지 못합니다.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짧은 단식 앞에서는 '생명 위험' 운운하며 야단법석을 떨던 조선일보가 목숨을 내건 지율 스님의 기나긴 단식에 대해서는 눈 먼 봉사로 자처하는 까닭을 난 알지 못합니다. 그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 자체가 부재한 탓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은 시인의 시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언론은 확성기입니다. 자그마한 외침을 크게 공명시켜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는 메아리 말입니다. 언론이 관심을 갖고 '이름'을 불러줄 때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것들이 모두에게 의미있는 '꽃'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기자들이라고 이를 모르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지율 스님은 지금 정치인들이 함부로 내뱉은 말의 무게를 되찾고자, 나아가 개발을 미끼로 마구잡이로 파헤쳐지지는 이 땅의 생태계를 구하고자, 제 한 몸을 초개처럼 내던졌습니다. 단식 80여일을 넘긴 지금 그의 몸에는 죽음을 재촉하는 검은 반점이 여기저기 치솟고, 승복에 가려진 그의 팔 다리는 청성산의 이름 모를 풀처럼 앙상하게 말라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습니다.

지율 스님의 몸은 이미 의학적으로 회생불가능한 상태를 넘어섰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가 당장 단식을 중단한다 해도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들 말합니다. 이처럼 그는 모질게도 자신의 살 길을 스스로 차단한 채 죽임의 세력에 맞서 감연히 홀로 맞서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듯 죽어가는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며 곁에 서서 무력하게 바라만 볼 뿐.

지율 스님은 이처럼 언론의 의도된 무관심 속에서 이름조차 불려지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최병렬 전 대표의 단식현장을 찾아 그를 친히 위로한 김수환 추기경조차 거들떠 보지 않고, 자연사랑 인간사랑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일등신문' 조선일보조차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살벌한 침묵 속에서 외롭게 자신을 비워가고 있습니다. 스님이 잘못되면 조선일보는 그때 가서 뭐라 말할까요?  두 눈 부릅뜨고 지켜 볼 작정입니다. (2005.01.25)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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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어른이 | 2005/01/25 10:30 | 문한별 칼럼(2005)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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