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중산층의 교회


1.
예수는 누구인가? 그 분은 -교회에서 늘 강요하듯이- 눈을 감고 생각하기만 해도 절로 감동되어 눈물이 흐를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인가? 교회는 가르친다. 성숙한 신자의 삶이란 예수처럼 사는 것이라고. 그러나 '예수처럼 사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그 삶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가리켜서 '예수와 같은 삶'이라 말하는가?

2.
온유함? 항상 미소를 띠고 어느 때나 분노하지 않고 좋은 말로만 응답하는것? 그러나 예수는 종종 분노하지 않았는가? 좋은 처세술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사방에 적을 두고 있었다. 예수처럼 사는 삶은 어떠한 것인가? 과격하고 남을 상처주는 말은 하지 않고 어느 때나 이해하며 부드러운 어법을 구사하는 것? 그러나 예수는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욕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마 23:33, 12:34). 이 말은 한국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개 새끼'라는 욕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개 새끼'라는 욕은 경멸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독사의 새끼'란 욕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을 놈아"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예수처럼 사는 것은 무엇인가? 경건한 표정을 짓는 것? 가급적 얼굴에 진지하고 슬픈(?) 빛을 약간 띄고 웃음은 삼가하는 것? 매사에 조심스럽고 점잖은 것? 그러나 복음서를 보라. 예수께서 제일 잘 가신 곳은 바로 회당과 잔치집이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하신 그 분은 또한 잔치집에서 스스럼없이 흥겹게 어울려 노는 분이기도 하셨다. 그 분의 행동은 언제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 "어찌하며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막 2:16), "어찌하여........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막 2:18). 이런 파격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그가 얻은 평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 11:19).

또 우리는 어떤 사람을 꾸짖을 때 "사람이 왜 그렇게 매사에 도전적이고 따지고 드느냐?"고 한다. 어른을 대하여는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세를 잃어서는 안된다. 전통은 지켜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모든 행동에 있어서 남의 눈살을 찌푸리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예수는 어떠했든가? 그 분은 과격하다 못해 급진적이었다.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엄수하던 안식일을 처참하게(?) 유린했다. 그분은 상식을 파괴했다. 당시에 금기시되던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서 같이 떡을 떼고 건배하였다. 그는 오히려 율법의 교사라고 불려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는 가는 곳마다 충돌하였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다 더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한다면 예수에 대해서 다른 시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3.
아다시피 예수는 당시 사회 속에서 진지하게 취급되지 못하였다. 한때 그를 종말론적 메시아로 생각한 민중들은 그 뒤를 따르다가 머잖아 등을 돌리고 말았다. 12제자들은 그보다 나았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의 문제일 뿐이었다. 제자들도 곧 그를 버리고 달아났다. 어떤 제자는 그를 부인하고 어떤 제자는 그를 팔아넘겼다. 아무도 그를 이해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가하면 그 맞은 편에는 원수들이 있어서 그를 철저하게 반대하고 증오했다. 바리새인들이 그 대표자격이었다. 우리는 이 바리새인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4.
바리새인들이 누군가? 로마제국의 속국이었던 팔레스틴땅에는 빈곤하고 절망에 빠져버린 '암-하-아레츠'(Am-Ha-Aretz)와 역시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기는 했어도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안전을 누리고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바리새인들, 그리고 로마에 빌붙어서 영주, 제사장, 귀족 등의 특권신분을 행사하였던 사두개인들이 계층적으로 존재하였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바리새인들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말하자면 도시의 중류 소시민 계층, 혹은 중산층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생각해보라. 중산층의 심리가 어떤가를? 그들은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안정을 원한다. 그들이 허용할 수 있는 변화란 '안정 속의 개혁'이다. 또 그들은 중산층이라고 하는 철저한 계층의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관습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의가 있고 상식이 있다. 그들은 전통에 대하여도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다. 이들의 눈에 뿌리없이 흔들리고 여기저기 모여서 거대한 다수가 되어 정치적 소요를 야기하는 암하아레츠 같은 집단들은 도무지 재미 없고 상대해서는 안될 버러지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성경은 필수 과목이었고 특히 율법을 세부적으로 알아야 열등인간이나 하류계층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율법과 전통에서 벗어난 사람을 죄인이라고 불렀는데, 불학무식하고 배운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자연히 '율법을 모르는 족속'으로 간주되어 몹시 천대받았을 뿐 아니라 극심한 증오를 받기도 했다. 랍비 요카난의 말을 들어보라 : "무식한 사람은 물고기같이 갈기갈기 찢어도 좋다. 그들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사람은 마치 딸을 사자 앞에 묶어 놓는 것과도 같다".

5.
바리새인이라고 욕하지 말자. 바리새인이라고 정죄하지 말자. 우리는 이제까지 세리는 칭찬하고 바리새인은 욕하도록 교육 받아왔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이해가 당시 사회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눈으로 보자면 비난받을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고 죄인이다. 이들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경건하고 신앙 좋은 사람들이다. "토색이나 불의나 간음을 하지 않고 이레에 두번씩이나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눅 18:11-12) 바리새인들은 누가 봐도 칭찬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정죄했던 것은 그러한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들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높이고 남은 멸시하는'(눅 18:14) 그들의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관습에 익숙했고 상식을 존중했다. 아니 그들은 상식의 대변자였다. 그들은 존중해야 하는 사회의 예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상대해서는 안될 사람과 같이 어울려도 좋은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사교적인 지혜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절제를 잘 하는 사람들이어서 사회적으로 봐서 지나치다 싶은 행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들이 무작정 보수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도 상류층과 로마 정부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동시에 극성스런 암하아레츠에 대하여는 보다 더 강경한 비판적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의 양식은 그들이 속해 있는 중산층에 현저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의 종교는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계층의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요 그들의 계층구조에서 이같은 종교와 문화가 발원되는 것이라 하겠다.

6.
이로 보건대 바리새인은 바로 중산층에 기초하고 있는 우리요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우리의 교회는 철저하게 중산층화되어 있고 이것이 잘 되어 있을 수록 우리는 그것을 '부흥된 교회'라고 말한다. 교회만 중산층화 되었을 뿐 아니라 그 가르침 역시 중산층의 윤리를 그대로 내보내고 있다. 다만 그 이름을 예수의 것으로, 혹은 성경의 것으로 바꾼 채로. 그래서 우리가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할 때 기묘하게도 그것은 예수를 닮기 보다는 예수를 비판하고 적대시한 바리새인을 닮고 있다. 과격함을 피할 것, 항상 경건하고 종교적일 것.....

그래서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볼 때 성경의 예수는 더 이상 감동하고 감격해야 할 예수가 아니라 비판받아야 할 대상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비판하는 서글픈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 교회가 예수를 교회의 교훈으로 비판해야 한다면, 그 교회는 예수로부터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가!

7.
그러므로 교회여! 교회여! 예수를 비판할 수 있고 예수를 비판해야만 하는 교회여! 그 교회는 도심 안에 있고 건물은 호화롭구나. 근엄한 얼굴로 설교를 하는 목사님은 예수를 말하는데 그 예수는 교회문 밖에 슬피 앉았구나. 교회여.... 너, 예수없는 교회여!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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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 2007/05/28 14:50 | 교회개혁을 위한 묵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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