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3~17) 6-1. 여기 두 개의 물음이 있다. 두 물음 모두 내용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대답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대상에서 상이하다. 이런 상이점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결정짓는다. 여기 동일한 두 개의 물음이 있다. 그러나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 두 개의 답변이 나온다. [물음] ................."나를 누구라 하느나?" ----------------------- [답변.1] 사람들 : "당신은 혹 세례 요한, 혹 엘리야, 혹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입니다." [답변.2] 베드로 :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어찌하여 동일한 물음에서 이토록 상이한 대답이 초래되었을까? 6-2. 태초 이래로 사랑의 관계는 늘 1:1이다. 사랑은 본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까닭이다. 하나님의 동산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날 때부터 그러했다.(cf. 창 2:24 ; 마 19:4~5) 사랑이 아닐 때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여도 좋았던 것이 사랑일 때는 오직 유일한 '당신'이 된다. 이때 '당신'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되거나 필적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독자적 존재로서 내게 다가온다. 사랑이 아닐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사랑일 때는 '모든 것'이 된다. 이때 사랑 안에서 '나의 전부인 당신은 내 삶에 기쁨과 활력과 소망과 의미를 부여해 주는 절대적 존재가 된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6-3. 사람들에게 예수는 다른 누구와도 대체가능한 우연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예레미야와 비슷한 선지자들 중의 하나'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예수는 "....과 같은 사람"이거나 "....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베드로에게 예수는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존재다.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시몬에게 예수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다시 없을 유일한 분이었다. 그에게 예수는 오직 사랑이었다. 6-4. 사랑은 비교를 초월하는 고산지대에서만 서식하는 식물이다. 비교라는 불순한 공기에 닿으면 사랑은 시들고 만다. 사람들은 예수를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예레미야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선지자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를 사랑하지 아니한 까닭이다. 그러나 시몬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그를 사랑한 까닭이다. 선지자는 많지만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 밖에 없는 것이다. .... 밤은 수천 개의 눈을 갖고 있지만, 낮은 오직 하나 뿐. 그러나 해가 지면, 세계는 그 밝은 빛을 잃어버리나니. 마음은 수천 개의 눈을 갖고 있지만, 진심은 오직 하나 뿐. 그러나 인생의 빛도 사라진다네. 사랑이 다할 때. / ..... (보드리옹) .... The night has a thousand eyes, The day but one. Yet the light of a bright world dies, with the dying sun. The mind has a thousand eyes, The heart but one. Yet the light of a whole life dies, When love is done....................................... 그래서 시몬이 예수를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 그 말은 "당신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내 사랑이며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고백인 것이다. 6-5. 사랑은 우선 그 대상을 비슷한 다른 존재들로부터 구별한다. 그리하여 1:1의 관계 속에 불러 세운다. 이러한 단독자의 관계에서 사랑은 최고의 현실이자 제의적 현실로서 인식되어지고, 삶에 의미와 활력을 주는 충격으로 경험되어진다. 1:1의 관계 속에서 싹트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반정립적'(anti-thesis)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이든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중간(something)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베드로의 고백에서 나타난 사랑의 제 6 원리다. 그러므로 사랑을 고백하는 이여! 그대 자신의 입술로 대답할지어다. 사랑이 그대를 향해 이처럼 물어올 때 ; -------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 "..........................................."(...............................................) - 어른이 -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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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by TNS at 08/19 예전 글이군요... 공모.. by 흠... at 08/19 ㅎ by 엄마 at 08/17 이글을 복사해서 단 3군.. by ddd at 08/13 이대통령에게 너무나 안.. by 안영목 at 08/09 진짜 막장이네, 어떻게.. by 에구 at 08/08 ㅁ맛잇어 보이네요 위치.. by 영숙 at 08/06 와 정말 예쁘네요. 블로.. by 아톰 at 08/03 .. by 프리 at 07/24 씨발 엘프새끼들아 니네.. by 프리 at 07/24 가 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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