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부끄러움 뿐이다. 눈을 감으면 지난 날의 부끄러움이 봄날 아지랑이마냥 아스라히 피어난다. 내가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참여한 것은 99년 후반기다. (그 전에는 PC통신 유니텔에서 잠깐 글을 썼다.) 들어간지 두어달 만에 기존의 3대 칼럼니스트에 더해 4대 칼럼니스트란 이름을 부여받았고, 2001년에는 연대소위원장이란 직책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해 3월에는 우리모두 연대소위원장 겸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집행위원의 자격으로 조선일보 본사 앞 일인시위를 책임 진행했다. (태평로 본사 앞 일인시위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3월 26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된 조반련의 일인시위는 기존 일인시위의 수준을 한단계 엎그레이드시키며 안티조선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일인시위를 첨부터 끝까지 기획.진행한 사람으로서, 문정현.문규현 형제신부님, 이장희.강정구.김정란 교수, 곽태영 4월혁명회장, 홍근수 목사, 김용삼 민족문제연구소 위원장, 김민수 전 서울대 교수, 진관 스님 오동명 전 중앙일보 기자, 최병수 화백, 서준식 사랑방대표, 문대골 목사 등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열혈 투사들과 더불어 근 석달 동안 치열하게 싸웠던 이때의 경험을 나는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매일 조선일보 본사로 출퇴근(?)하다시피 했는데, 그때 끊긴 속도위반딱지들이 지금도 훈장처럼 남아 있다. 일인시위의 피크는 마지막 날인 5.17일이었다. 그날 조반련 차원의 마무리집회가 계획되어 있어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모였다. 태평로 조선일보 본사 앞은 밀려드는 인파로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전경들까지 무지막지하게 밀려 들었으니.... 나는 한 시간 동안 이들 앞에서 신명나게 악을 쓰며 구호를 선창했다. (일인시위 기간 내내 나는 대중을 상대로 늘 구호를 외치며 선전전을 펼쳤다.) 이어 가수 '디지'의 기습적인 게릴라 콘서트로 멋지게 피날레.... and so on. 그렇게 성공적으로 모든 집회를 끝내고 나는 문규현 신부가 새만금개발반대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프레스센터 20층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문 신부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김지하 시인을 만났다. 김 시인은 90년대 초에 문제가 된 '죽음의 굿판' 운운한 사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배신자'란 욕을 먹고 칩거.은둔해 있던 중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서울시청 앞 일인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수년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터였다. 그 역시 시청 앞 일인시위를 끝내고 프레스센터로 온 모양이었다. 내가 갔을 때는 기자회견이 끝나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문규현 신부는 기자들에게 붙들려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 김지하 시인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측은하고 불쌍했다. 나 역시 김 시인의 '죽음의 굿판' 발언에 분노했던 사람 중의 하나지만 풀 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를 그냥 치기가 뭣해서 부러 말을 건넸다. 벌써 몇년 전이라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내가 한 건망증 한다.) 그러나 깐에는 그를 생각코 말한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일방적으로 나무라는 투로 말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왜 그때 그런 식으로 글을 썼느냐.... 참말 안타깝다.... 조선일보같은 반민주세력에게 이용당할 걸 몰랐는가.... 그로 인해 이쪽 진영이 큰 피해를 당했다.... 또한 당신도 따돌림당하고 칩거까지 했으니 얼마나 큰 손실이냐.... 운운.... 아마 한참을 떠들었을 것이다. 그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고 "네...네..." 하며 어린 양처럼 순순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천하의 김지하 시인이 내 앞에서 이처럼 무력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것은 내게 지금도 충격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충격은 다시 부끄러움으로 변해서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김지하 시인에게 일방적으로 설교(?)할 수 있는 자격이 못된다. 김 시인은 누가 뭐래도 민족문학의 태두요, 나는 그에 비해 먼지나 다름 없는 존재인 탓이다. 그런 내가 뭐가 잘 났다고 감히 그를 꾸짖고 가르치려 했을까. 물론 나는 지금도 김 시인의 '죽음의 굿판' 발언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시간 고통의 세월을 견디며 모처럼 바깥나들이 한 그에게 나같은 무명소졸까지 나서서 질책의 말을 보탰어야 했을까. 그건 주제넘은 짓이요 건방진 짓이었다. 운동 이전에 인간적인 면으로 봐서도 그리 해서는 아니되었다. 차라리 그냥 모른 체 지나쳤더면 이같은 부끄러움은 없었을 것을. 아무도 나서서 발언하는 이가 없을 때 입을 여는 건 아름다운 용기다. 그러나 말이 넘치는 곳에 호승심에 겨워 또 하나의 말을 더하는 건 부질없는 치기다. 어제 저녁 KBS 1TV <인물현대사> 시간에 소설가 이문구와 연관된 기억을 증언하는 김지하 시인을 보았다. 그를 보니 문득 지난 날의 민망함이 도져서 이렇게 내 심정의 일단을 기술한다. "김지하 시인이여, 앞뒤 가리지 못하는 철 없는 목사를 용서하시라."(2005.1.29) ----------------------------------------------------------------------------------- *** 5월 그날이 다시 돌아오니 그때의 부끄러움이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 어른이 -
|
Calendar
카테고리
문한별 칼럼(2008)문한별 칼럼(2007) 문한별 칼럼(2006) 문한별 칼럼(2005) 문한별 칼럼(2004) 문한별 칼럼(2003) 문한별 칼럼(2002) 문한별 칼럼(2001) 문한별 칼럼(2000) 교회개혁을 위한 묵상 성경공부(강의) 연재 한별의 시편 한자로 풀이한 성경 살아가는 야그 먹는 즐거움 issue hunting crazy media today's cartoon all that sports laugh with me and so on.... 김영호의 매운 정치훈수 하재근의 보다 나은 세상 정문순의 여성 플러스 문학 황문성의 감성사진 앨범 김종선의 부동산 비밀과외 최근 등록된 덧글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by TNS at 08/19 예전 글이군요... 공모.. by 흠... at 08/19 ㅎ by 엄마 at 08/17 이글을 복사해서 단 3군.. by ddd at 08/13 이대통령에게 너무나 안.. by 안영목 at 08/09 진짜 막장이네, 어떻게.. by 에구 at 08/08 ㅁ맛잇어 보이네요 위치.. by 영숙 at 08/06 와 정말 예쁘네요. 블로.. by 아톰 at 08/03 .. by 프리 at 07/24 씨발 엘프새끼들아 니네.. by 프리 at 07/24 가 볼 만한 곳...
포토로그
이글루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