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이제 그만 ‘촛불’로부터 자유하시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촛불은 평화다. 조용히 불타올라 제 몸을 사르는 고귀한 희생이다. 연약한 몸짓으로 어둠을 깨우치는 각성이다. 교회수련회 시간마다 캔들파이어가 빠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터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촛불은 필경 상처다. 아픔이다. 지워지지 않는 악몽, 내면에 깊게 각인된 트라우마다. 지금 하는 짓들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촛불'에 얼마나 크게 데였으면 유모차부대 엄마들까지 잡아 넣으려 할까.

아마 이 대통령은 할 수만 있다면 그의 기억과 뇌리 속에서 '촛불'이란 단어를 깨끗히 삭제하고 싶을 게다. 방미 직후 부시 미 대통령에게 조공하다시피 바친 쇠고기협상 때문에 전국 방방 곳곳에 촛불이 켜지고 덕분에 취임 100일만에 지지율 7%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작성하기까지 했으니까.
 
▲ 촛불집회 현장에서 찍은 사진 @문한별

촛불이 불태운 것은 지지율만이 아니었다. 보수언론이 예쁘게 포장한 유능한 지도자라는 화장빨도 그 앞에서 무참하게 녹아 내렸다. 대통령과 기업CEO의 기본적 차이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그의 무능력과 위기상황 앞에서 무력한 그의 진면목이 백일 하에 드러났다. 오죽 하면 비판세력 뿐 아니라 그의 출현을 대망했던 지지세력들까지 실망스런 표정으로 등을 돌렸을까.
 
그래서였을 게다. 촛불정국에서 기사회생하자마자 이 대통령이 '촛불 죽이기'와 자기합리화에 나선 것은. 촛불 앞에 두 번이나 머리를 숙여야 했던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아니 가는 것도 아니다. 손상된 권위를 보상받자면 어쩔 수 없었겠지. 설치류 수준으로 추락한 이미지를 내심 회복하고 싶었을 테니까. 나아가 자기가 몰리는 상황을 어떻게든 역전시키고 싶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도 없지만, 암튼 이 대통령은 이후 친위언론을 등에 업고 적극적인 변명에 나섰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남탓'이란 딱지를 붙이는 작업으로 표출됐다. 이를테면,

1. 'PD수첩 탓'.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문제로 나라를 이처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전적으로 MBC PD수첩의 악의적 오바 때문이다. PD수첩이 광우병 위험을 앞장서서 나팔불지 않았더라면 촛불시위가 이렇듯 대대적으로 촉박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검찰이 특수팀까지 구성해서 대대적으로 PD수첩 수사에 나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조치다.

2. '노무현 탓'. 이른바 '설거지론'이다. 문제가 된 쇠고기 협상은 실은 전임 노무현 정권이 물려준 것을 뒤치다꺼리 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이명박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억울하다. 따라서 협상이 굴욕적이고 잘못 됐다고 욕을 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해야 한다.

3. '인터넷 탓'. PD수첩의 잘못된 보도가 청소년들에게 광범하게 유포되고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인터넷 때문이다. 인터넷을 잘 이용하면 약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 인터넷 공간을 거짓정보와 유언비어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 본인확인제 등 특단의 종합대책을 강구.모색해야 한다.

4. '시민단체 탓'. 불법.과격으로 변질된 촛불집회 배후에는 반미.친북.좌경 시민단체가 있다. 이들이 광우병종합대책위를 실질적으로 구성하면서 반정부시위를 선동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이들 불온단체들을 엄단하는 한편, 차제에 비판적인 다른 시민단체들까지 수사를 확대하여 감시.관리토록 해야 한다.
 
5. '교과서 탓'. 공부에만 전념해야 할 초중고 학생들이 '이명박 OUT'이란 팻말을 들고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은 좌편향에 물든 교과서 때문이다. 따라서 뉴라이트측이 제안한 대로, 교과서를 전면 뜯어 고쳐 대북 반공의식을 고취하고 건국 60년 한국현대사에 대해 자랑스럽고 긍정적인 내용만 기술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남탓' 리스트를 대강 기억난 대로 적은 것만 해도 이 정도다. 낱낱이 검색하면 그 분량은 이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입만 열면 계속 '남탓'만 읊어댔으니까. 조중동으로부터 '남탓의 달인'이라고 끊임없이 비판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대통령에 비하면 게임이 안 될 게다.

도대체 이 대통령은 어쩌자고 이런 짓을 반복하는 걸까? 이런다고 지난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고 새살이 돋기라도 하나? 그렇지 않다는 걸 본인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애꿎은 유모차부대 엄마들에게까지 눈을 부라리며 유치한 책임전가와 촛불죽이기에 매달리는 걸 보면, 확실히 촛불의 내상이 크긴 컸던 모양. 그렇지 않고서야...

이 대통령에게 고언한다. 부인하고 변명하고 잡아 가두는 건 아픔을 치유하는 올바른 해법이 되지 못 한다. 온전한 사람은 꾸중을 들었을 때, 겸허히 잘못을 인정하고 책망을 달갑게 받아들인다. 설혹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려니' 하고 감사히 받아들인다. 신앙인이라면 더더욱 그리 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디 더이상 추한 꼴 보이지 말고 이제 그만 촛불로부터 자유하시라.



- 어른이 -
by 어른이 | 2008/10/17 01:34 | 문한별 칼럼(2008)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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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플루토 at 2008/10/17 01:42
오랜만에 글 올리신 것 보니 반가운 마음부터 덥석 드네요. 잘 읽고 공감하고 갑니다. ^^
Commented by 누리 at 2008/10/17 06:34
오랜만이시네요. 반갑습니다.
Commented by 작년에왔던 at 2008/10/17 08:24
각설이는 진짜 죽지도 않네.
Commented by 트래핑 at 2008/10/17 09:45
간만에 글 쓰시네요. 애독자인대 앞으로도 글을 많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구멍난위장 at 2008/10/17 12:37
오랜만의 포스팅이네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10/17 15:03
제 흔적을 찾다가 우연히 이글루에 들렀답니다.
다들 평안하시죠? ^^

본격적인 포스팅까지는 아니고,
틈 나는대로 다른 곳에 올린 글을 옮기도록 할께요.

기억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불초소생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꾸벅~~~
Commented by 無名공대생 at 2008/10/17 15:51
살아계셨군요. 생존소식을 알려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 합니다.
Commented by 大望 at 2008/10/20 01:17
티스토리에 가끔 가긴하지만, 이글루에 익숙한 탓인지 글보는게 힘들더라구요. 반갑습니다.
Commented by 키무타쿠 at 2008/10/21 19:50
오랫만에 보는 포스팅!!! 정말 반갑습니다. ^_^/
Commented by 영화마을이장 at 2008/11/16 23:48
겨울문턱에서 건강유념하세요....^^

인사 여쭙고 갑니다...!!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12/02 09:25
이제사 봤습니다.
답이 늦어서 죄송.
엠파스 말고 다른 동네에서 뵈니 느낌이 새롭네요.^^
평안하시죠?
Commented by 이바우 at 2008/11/30 02:24
가끔 어린 아이들이 어른인체 하는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합니다만은 쟁그럽기도 하지요. 성경에 이 비슷한 말씀이 있지요? "내가 어렸을 때는 생각하는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느끼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말 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모든 것을 버렸노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른님, 당신이 오늘 생각하는것, 느끼는것, 말 하는것이 스스로는 어른이라 하지만 얼마나 유치하고 미성숙한지요. 속히 이름부터 바꾸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로요. 그리고 신앙인의 이름 욕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12/02 09:30
1. 내 아이디는 '어른이'지 '어른'이 아닙니다.
2. '어른이'는 '어른'과 '어린이'를 합친 말로, 어린이처럼 맑은 어른이 되고픈 소망을 담은 말입니다.
3. 모르면 말을 하지 마세요. 모르면서 아는 척, 함부로 지껄이는 게 바로 '미숙'이고 '유치'입니다.
4. 마지막으로, 예수 이름 멋대로 들먹이지 마세요. 그것이야말로 예수를 욕되게 만드는 짓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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