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1편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 (1)의인의 모습(vv.1~3) - (2)악인의 모습(vv.4~5) - (3)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두 운명(v.6) (1)먼저 vv.1~3을 통해서 '복 있는 사람'이라고 노래불려진 의인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v.1 : 1절은 "복 있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원문대로 읽으면, "행복하여라! 이 사람은..."(히.아쉐레 하이쉬...)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은 "행복한 사람은 ~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또 "~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식으로 본문을 이해해서도 안됩니다. 이 말은 '복이 있게 될 것을 비는 소원이나 약속'이 아니라 "이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냐!"라고 외치는 즐겁고 열광적인 탄성이며 감탄문입니다. 영어로 읽으면 뜻이 더 분명해 지겠군요. "Oh! How happy is the man!" "행복하구나!"하는 감탄문으로부터 시편은 시작됩니다. 여기 "행복하구나"라는 말을 우리는 '종교적인 축복'의 의미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아쉐레'라는 말은 '세속적인 행복'을 나타낼 때 쓰는 말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과 관계해서 '복있다'는 말을 쓸 때에는 이 말을 쓰지 않고 대신 '바룩'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삼상 15:13을 보십시오."(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히.바루크)." 또 출 18:10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찬송하라." 이 말은 본래 "복되도다(히.바루크), 여호와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되어라"라고 읽기보다는 "차라리 행복하여라!"고 읽는 것이 히브리어 본문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히브리어를 표기할 수 없어서 유감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행복한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시인은 1절에서 그것을 먼저 부정적으로 말하고, 2~3절에서는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먼저, 1절의 답변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켜 구분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민족공동체라고 알려진 히브리민족 안에 '의인'과 '악인'의 구별이 전제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 그들은 민족단위로 이방의 압제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나라와 그 민족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 구분해야만 했습니다.(민 23:9) 그러나 지금 그들은 이방나라들로부터 나뉘라는 말 대신에 '그들 안에 있는 악인들의 무리'에서부터 스스로를 지켜 보호하라는 명령을 듣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지혜문학에서 현저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잠 1:10~19, 4:14~19을 찾아 보십시오. 또 시 26:4~5을 찾아 보십시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스라엘 안에 '의인'과 '악인'의 구별이 생겼으며, 이러한 상황을 전제하고서 '행복한 사람'은 '악한 자들과 명백히 선을 긋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아니다!'(히.로)로 일컬어지는 행복한 사람의 특징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 그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아 ‘따라가지’ 않습니다. - 그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 그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걸어가다’ > ‘서다’ > ‘앉다’ 라는 단어가 클라이막스를 이루며 나열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과 관련해서 각각 3종류의 사람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 '악인-죄인-오만한 자' 먼저, 악인은 히브리어로 '레샤임'인데,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정죄받고 대제사장에 의해 성전에서 쫓겨난 자를 말합니다. 이와 연관해서 시 15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그곳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기 앞서, 문입구에서 15:1에 있는 물음을 던져야 했습니다 : "오! 여호와여, 누가 감히 당신의 장막에 거하며 누가 감히 당신의 거룩한 산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문안쪽에서부터 제사장의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것이 시 15:2에 나와 있습니다 :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로다." 그 밑에 있는 시 15:3~5은 2절의 풀이이며,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경우에 맞춰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정직히 행하는 것이고 공의를 일삼는 것이며 그 마음에 진실한 것인가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배경에서 볼 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무리들은 의인의 회중으로 간주되고, 악인은 거기에 끼지 못합니다. '악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경시하는 사람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이 결여되어 있고, 하나님 없어도 세상을 잘 살 수 있다고 호언하는 사람입니다. 시 10:3~4을 보십시오.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3~4) 이 사람은 율법 대신에 자신의 삶의 철학과 요령을 갖고 있습니다.시인은 그것을 '악인의 꾀'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은 세상을 힘 안들이고도 잘 사는 꾀를 갖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출세와 성공으로 직결하는 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따라 갑니다. "이 길이 행복으로 통하는 지름길이다!"고 외치면서.... 그러나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그런 사람의 꾀를 따라 가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세상의 출세와 성공과 재물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그런 사람을 따라가지 아니합니다. 왜냐? 그 사람은 악인이며 그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도가 없고 율법의 말씀을 경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행복한 사람 자신이 주 안에서 이미 남들이 모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죄인'은 히브리어로 '하타임'인데,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리는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이 율법을 거스려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죄인'은 하니님께서 유법을 통하여 '하지 말라'고 엄금하신 명령을 어기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슬로건은 '몰래 따먹은 사과가 더 맛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서서 죄악에 동참합니다. "이것이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닌가!" 하면서... 그러나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그런 사람의 죄에 동참하지 아니합니다. 왜냐? 그 사람은 죄인이며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명백히 율법을 거스리는 악한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이미 주 안에서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로, '오만한 자'는 히브리어로 '레침'인데, 하나님과 그 율법을 조롱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아마 '비웃는 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율법을 무시하고 그것을 어기는 것을 다반사로 하는 사람은 나아가 하나님의 율법을 비웃고 조롱하며 모욕하게 되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이들의 수효도 적지 아니합니다. 이들은 그룹 혹은 서클을 지어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합니다. 이들의 모습에 대해 시 73:6~12에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 입는 옷이며, 살짐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편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시 73:6~12) 이 세상의 법칙이 본디 그러합니다. 악인들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고 더 잘 법니다. 이들은 얼마나 잘 먹는지 얼굴에 살이 쪄서 그만 눈이 앞으로 튀어나올 지경입니다. 그들은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마음 속으로 "내가 이만큼 벌어야겠다"고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쓸어 담습니다. 이들은 값비싼 목걸이와 엄청나게 비싼 명품옷을 몸에 걸치고서 한 없이 교만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교회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조롱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은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자리에 낄려고 갖은 애를 다 씁니다. "성공하려면 가진 자들과 먼저 친해져야 한다"고 떠벌이면서.... 그러나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이들의 자리에 끼지 않습니다. 왜냐? 이들은 오만한 자들로서 그들이 하는 짓이란 기껏해야 하나님의 율법과 그 교회를 비웃고 조롱하는 것에 불과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장 권세있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이미 맛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살펴 본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율법을 멸시한다는 점에서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특징적인 면에서 이렇게 나뉠 뿐, 그들의 본질은 같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결코 이들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사람'은 '의인'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옛선조들은 그 후손들을 교육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이 얼마나 적절한 말씀입니까? 악인들로 하여금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으라 하십시오. 그들이 제 아무리 값비싼 목걸이를 걸치고 아름다운 옷을 걸쳤다 하더라도 그들의 본래 몸뚱아리는 까마귀에 지나지 않으니 그들이 잠깐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의 죄악이 초음파처럼 선명하게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야 그들에 비하면 백로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어서 한없이 고상하고 깨끗한 존재 아닙니까? 고상한 성도들이 까마귀같이 더러운 자들의 무리에 기웃거리고 그들을 부러워해서 되겠습니까? v.2에서 시인은 그것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행복한 사람은 율법을 즐거워 한다. 둘째)행복한 사람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율법을 즐거워 한다"는 것은 정서적 측면을 말하는 것이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율법에 대한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상관관계에 대해 요한 깔뱅은 이렇게 말합니다:"....율법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그것을 끝없이 묵상할 마음이 나온다." 본문 가운데 두 가지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즐거움'(חפץ, 헤폐츠)이란 말과 '묵상하다'(הגה , 하가)는 말입니다. '헤페츠'는 "바라다, 기뻐하다, 사랑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성경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 과연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슴이 뛰는가?" 다윗은 성경의 맛을 "꿀보다 맛있고 포도송이보다 달다"고 했는데 과연 이런 맛은 다윗만이 볼 수 있는 걸까요? 일본 시청자들이 "겨울소나타"라는 드라마를 기다리는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이 성경말씀을 알려는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하였던가요? 여러분은 성경을 배우는 이 시간이 즐겁지 아니한가요? 저는 성경을 배우는 것이 무지무지하게 즐겁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기쁨을 갖고 계시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더러 틀릴 때도 있지만요. 여러분, 성경을 연구하면 마음이 뜨겁고 흥분되지 않습디까? 때로는 그 흥분이 지나쳐 황홀하지 않습디까? 저는 그런 맛을 많이 맛보았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7~10) 또 시 119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v.14)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였나이다."(v.20)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멸망하였으리로다."(v.92)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v.143)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였나이다."(v.174) 이러한 '즐거움'이 우리 가슴이 넘철 때, 우리는 기꺼이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할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하가'(묵상하다)는 "중얼거리다, 속삭이다, 사자가 먹이를 두고 으르렁거리다, 비둘기가 지저귀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사자가 맛있는 먹이를 두고 침을 흘리며 노려보는 것처럼, 우리도 또한 성경을 앞에 두고 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셔야 옳지 않습니까?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함은 해가 뜨는 낮이나 어두운 밤이나 할 것 없이우리의 모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돌아보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앞에서 '행복한 사람'의 특징을 부정적으로, 긍정적으로 기술한 후에 시인은 (v.3)에서 그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이 나무는 시냇가에 심었기 때문에 충분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때를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는 언제나 무성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행복한 사람은 언제나 그 행사가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 1:8에서 이와 비슷한 평행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율법책을 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그러나 이미 앞에서 암시된 것처럼, '형통'이란 말이 반드시 육체적 세속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 "이 성공이 육체의 성공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영혼 속에 너무 깊이 숨어 있어서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것을 차라리 커다란 불행으로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악한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처럼, 그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의 말씀을 배우는 이들을 또한 대적하고 미워한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온 세상의 힘을 빌어 신자들을 핍박하려고 한다. 그럴진대 우리는 가장 놀라운 기적의 증인들이다. 죽임을 당하는 곳에서 오히려 신자수가 증가하고 그들이 감소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더욱 흥왕하고 그들이 던짐을 당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더욱 견고하고 그들이 거꾸러트림을 당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승리한다. 이보다 더 놀랍고 위대한 기적이 어디 있는가?" (2)그럼 이제 vv.4~5을 통해서 '악인'에 대해 알아봅시다. v.4:행복한 사람 곧 의인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아서 항상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푸르러서 그 행사가 다 형통한 반면에, 악인은 '바람에 날려가는 겨'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비유됩니다. 농부가 곡식을 키질할 때, 속이 꽉찬 알곡은 땅으로 떨어지는 반면에 가벼운 겨와 지푸라기는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맙니다. 가벼워서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상징합니다. 이것과 (v.3)은 대조를 이룹니다. (v.3)의 나무는 물이 마르지 않는 시냇가의 땅에 굳건히 뿌리를 대고 있습니다. 그 나무는 견고합니다. 그러나 (v.4)의 지푸라기는 바람부는대로 이리저리 날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맙니다. 이렇게 '견고함, 지속성'(v.3)과 '가벼움, 헛됨'(v.4)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 "불휘 기픈 남간 바람에 아니 뮐새 곶 됴코 시절 하나니...."('용비어천가'의 한 대목)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행복한 사람은 뿌리깊은 나무처럼, 어떤 시련과 환난의 바람에도 휘어지지 않으며 언제나 많은 열매를 낸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꾀를 좇아 일신의 성공과 안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뭔가를 이루는 것 같아도 그것은 그 속에 뿌리가 전혀 없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어디론가 사라지고마는 지푸라기와 같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v.5:"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과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는 말은 시적 평행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을 원문대로 읽으면 "악인이 심판 안에 서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v.1)을 검토할 때, 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악인은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합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회중에서 끊어진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배드리는 의인의 회중에 들지도 못합니다. 의인과 악인은 완전히 구별됩니다. 완전히 구별된 만큼 그 둘의 운명도 전혀 달라집니다. (3)마지막으로,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운명에 대해 알아 봅니다. v.6:"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인정한다'는 말은 '야다'(ידע)입니다. 따라서 원문대로 이 말을 쉽게 풀이하면,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알아주신다"는 말이 됩니다. '알아준다'는 말 속에 의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하게 묻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그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 세상이 그를 알아주건 몰라주건, 악한 자가 득세하건 아니하건, 그는 오로지 하니님만을 바라봅니다. 그는 고난과 수고 속에서 더욱 크게 입을 열어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말씀을 사랑합니다"고 외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하늘에서 문을 열고 이렇게 화답합니다 : "그래 안다. 내가 너를 안다. 너의 아픔, 괴롬, 눈물을 내가 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는 너를 더 사랑한다. 내가 너를 쉬게 해 주겠다. 내가 너를 안아주겠다. 내가 너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겠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을 알아 주십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필경 멸망으로 줄달음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며 제 멋대로 사는 사람의 종말은 파멸 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가 못된 짓을 하며 웃었던 그 웃음보다 그가 나중에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더욱 클 것입니다. 이상으로 우리는 시 1편을 대략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경건한 신자만 살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악한 사람들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의 기쁨은 권력에 있고, 성적 향락에 있고, 재물에 있고, 자기 과시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성공은 그들의 몫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되고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부러워하지 아니하며 그런 것을 좇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저들이 모르는 즐거움과 기쁨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친교하며 믿음으로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악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 할 때 무엇으로 인도를 삼겠습니까? 오직 성경 아닙니까? 시인은 시 119:10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그럴진대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보지 않고 묵상하지 않고 그대로 놔둘 수가 있겠습니까? 부디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으로 즐거움을 삼으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내가 너희를 알고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고 우리의 수고를 인정해 주시고 알아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인의 행복입니다. - 어른이 -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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