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예수의 시각


현대인에게 돈은 이미 '거룩한 것'의 일부가 되었다. 사랑이니 정의니 진리니 하는 말들은 2차적인 것으로, 혹은 더 심하게 말하면 '쓸모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다. 사람들은 돈문제만 해결되면 노동문제를 포함하여 인간에 대한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이제는 돈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게 되었으며 돈은 유일한 실재(Reality)가 되었다.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며 유일한 실재가 된 돈이 야기하는 많은 문제들이 성경에서는 윤리적 차원에서 파악되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우선 영적인 문제들이다. 다시 말해서 돈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하나의 '권세'와의 관계의 문제이지 단순히 하나의 객체에 대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에 대한 예수의 시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 즉 하나의 영적인 권세로 화한 돈의 위력과 그 무서움이다.

신약성경 가운데 특별히 두 본문 -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마 6:24의 말씀과 소위 '납세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알려진 막 12:13~17의 본문 - 에서 우리는 돈에 대한 예수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 젊은 부자 청년에 대한 예수의 말씀(막 12:41~44) 이야기가 있으나 상기한 두 본문에 비해 주제가 단편적이고 생략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여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불의한 관리인의 비유(눅 16:1~13)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결어 부분이 마 6:24와 중첩되기 때문에 역시 생략한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1) 먼저 예수가 돈을 가리켜 '맘몬'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 자리에 돈을 가리키는 또 부를 나타내는 일상적인 다른 낱말이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맘몬'(mammon) - 그 당시에 잘 쓰이지 않은 - 이라는 낱말을 사용함으로써 예수는 돈을 의인화 내지 그것을 일종의 신격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맘몬은 '재물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기에서 '황금만능주의'(mammonism), '황금만능주의의'(mammonish), '황금만능주의자'(mammonist) 등의 낱말이 파생되었다. 맘몬의 어원은 '아만'(히.אמן)이며 그 뜻은 "확실한 것,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충성하다, 신뢰하다, 믿다"는 단어가 거기서 나왔고 나아가 "진리, 충성심" 등의 어원이기도 하다.(아만 > 아멘)

이것은 돈의 영적인 특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준다 : "돈은 가장 확실하고 가장 믿을 만한 것으로서 사람에게 신뢰와 부단한 충성과 믿음을 요구하는 권세이다." 권세는 스스로 움직이며 자율적이고 나름대로의 고유한 법칙을 갖고 주체로서 행위한다. 또 권세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인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인격으로서의 하나님과 인격으로서의 맘몬은 서로 병립 설정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충성과 믿음을 요구하듯이, 맘몬 즉 인격적이고 신적으로까지 높여진 돈도 충성과 믿음을 요구한다. 인간은 이 두 주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섬길 수 밖에 없다. 이 둘은 각기 자신의 법과 고유한 체계를 갖고 있어서 한 주인의 법칙을 따라 그에게 신실하면 다른 하나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다.

(2) 인격적이고 신격으로까지 파악된 돈의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에 적대적이며 심지어 위협적이라는 사실은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섬기다'는 동사에서 한층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 동사는 '찬양하다'(adore), '섬기다'(serve)는 뜻을 가진 예배언어로서, 그 아람어 동사(,abad)는 서구에서 숭배행위를 나타내는 '신성한 섬김' 혹은 예배의식'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구약성서에서 이 단어(히.하바드,עבד)는 잡신에 대한 숭배행위와 구별.대조되는 하나님 숭배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신 6:13, 7:16, 10:20) 이 잡신은 성서의 다른 부분에서 귀신(신 32:17 ; 시 106:37, 96:5 ; 고전 10:20~21) 혹은 '아무 것도 아닌 것'(레 19:4 ; 대상 16:26 ; 합 2:18 ' 렘 14:22)과 동일시된다.

여기에서 잡신과 야웨 하나님의 적이 예수의 입을 통해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존재로 표현된다. 그것은 재물이다! 돈에 대한 예수의 시각에서 이것이 아마도 결정적일 것이다. 예수에 의해서 돈 즉 맘몬은 하나님의 원수로 묘사된다. 하나님의 원수인 맘몬은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다.

(3) 요약 - 마 6:24의 말씀은 예수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 가운데 하나다. 예수는 돈을 가리켜 '맘몬'이라고 호칭함으로써 그것을 하나의 객체로서 보기보다는 오히려 인격화되고 신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가 돈을 하나의 영적인 권세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인격화되고 신격화된 영적인 권세로서 돈은 하나님에 대립하여 인간에게 충성과 믿음을 요구하는 주인으로까지 높여진다. 이처럼 하나님과 병립적으로 설정된 맘몬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원수로 간주된다. 이것이 돈을 맘몬이라고 부르는 예수의 근본시각이다.

[막 12:13~17]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를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니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가져왔거늘, 이 화상과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1)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본문을 근거로 하여 국가에 세금내는 문제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교회 내에서는 전통적으로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논거를 여기서 취해 왔다.

그러나 본문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적들이 던졌던 질문 -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 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려려는 악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약 징세를 내지 말라하면 로마 당국자에게 반역을 선동한 혐의로 고발할 명분이 되는 것이요, 반대로 징세를 내라 하면 로마에 반감을 품고 있는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예수로서는 얼마나 곤란했을 것인가.

그러나 예수의 답변은 교묘한 것이었고 그의 적들도 더 이상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눅 20:26). 그런데도 보수교회는 예수의 답변을 로마제국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라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쪽으로만 해석했다. 그렇다면 예수의 적들이 그처럼 굳게 입을 다물고 잠잠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독일의 신학자 귄터 보른캄(Gunter Bornkamm)은 예수의 답변을 '풍자적 대구'(ironical parallelism)로 본다. 즉 예수의 적들이 그를 흡잡기 위해 던졌던 로마제국의 정세에 관한 질문을 예수는 교묘히 우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가 이런 함정질문에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로마의 권세를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납세의 의무를 부인하게 됨으로써 고발당하게 되는 일도 피하는 풍자적 대구 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예수는 데나리온 하나를 손에 들어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주목하라 하신다. "이 화상과 글이 뉘 것이냐?" 알다시피 데나리온은 당시에 세를 거두기 위해서 주조된 은화였다. 동전의 앞 면에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오른쪽 옆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그 둘레에는 'TICAESARDIVI AVGFAVGSIVS - 위엄있는 가이사 티베리우스.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뒷 면에는 옥좌에 앉아서 왼 손에 올리브 가지를 든 파크스(평화) 신의 모습이 그려졌으며 그 주위에 'PONTIF NAXIM - 대제사장'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예수가 동전을 들고서 그의 적들에게 "돈에 새겨진 화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을 때, 실은 그는 한 개의 동전 속에 체현되고 있는 당시 문명사회의 권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사회의 모든 권위가 결국은 금전으로 구체화된 것을 지적하는 예수의 풍자는 매우 신랄하고 독특하다. 인정하든 안하든 이 세상은 돈에 의해서 지배된다. 돈이 곧 제국의 권력이요 힘이다. 돈이 지배하는 제국의 권력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이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돈은 '불의의 재물'(눅 16:11)이다. 그것이 '불의한 재물'인 것은 "재물 자체가 이 악하고 불의한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돈은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고 마음대로 활보하는 곳은 이 악한 세상이다.

그래서 죠반니 파피니(Giovanni Papini)는 예수의 답변을 이렇게 바꿔서 말하였다 : "악마의 배설물인 금전은 통치자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결국 예수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는 모든 제국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3)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악하고 불의한 시대는 돈의 권세 하에 놓여 있다. 돈의 지배는 매매관계라는 그물 안에서 시행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 그물 안에 걸려 든다. 일단 걸려든 다음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값이 매겨져서 다양하게 구매된다. 이런 과정에서 화폐가 결정적인 수단이 된다. 매매관계로부터 제외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인간조차도 매매의 대상이 된다.(암 2:6 ; 계 18:13) 과거의 노예제도가 그러했고, 지금도 성행하고 있는 인신매매가 그러하다. 노동력을 부자의 처분에 맡기는 가난한 자도 예외는 아니다.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천박한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곳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 전체, 그 가족의 삶과 내면까지도 부자들의 손에 처분되는 '인간 내면의 구매'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돈의 권세의 역학구조다. 이런 구조 하에서 인간은 하나의 대상(상품)으로 전락하고 나아가 하나님 아닌 다른 거짓 권위(맘몬)가 최고의 자리에 군림하여 통치하는 가치전도현상이 일어난다. 돈에 대한 인간의 예속은 갈 수록 심화된다. 가룟 유다에 의해 은전 삼십에 팔린 예수는 스스로 매매의 대상이 됨으로써 맘몬이 지배하는 이 악한 세상의 비정함을 가장 처절하고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폭로하고 고발한다.

[닫는 글]

돈에 대한 예수의 시각은 철저하게 영적이며 동시에 부정적이다. 영적이라 함은 돈을 하나님에 대적하는 인격화되고 신적인 권세로 파악하는 것을 이름이며, 부정적이라 함은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는 무관한 악하고 불의한 이 세상의 지배세력일 뿐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께서 몸소 맘몬의 희생제물이 되신 것은 우리로 그 역학구조에서 벗어나 '거저 줌'의 은혜의 법으로써 이 세상을 이기라 하심이다. (90.9.26)



- 어른이 -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어른이 | 2007/05/01 23:05 | 교회개혁을 위한 묵상 | 트랙백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iandyou.egloos.com/tb/17674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observer at 2008/01/23 04:12
커헉..이런 좋은 글을 이제서야 읽게 되다니요.
완전 안구에 쓰나미가..ㅠ.ㅠ
살다보면 돈때문에 참 시험받게 됩니다.
돈신의 우상은 참 유혹적이라서.
돈에 잡혀 노예처럼 사는게 아니라 돈을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데.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1/23 05:52
observer / 이 글이 님에게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눈물 닦으시구요. ^^
Commented by 찬빠 at 2008/04/22 17:16
돈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처분의 대상으로
비지니스를 부의 축적이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식구들
더 나아가 이웃들의 생계를 위한, 내가 속한 사회 모두의 공익을
위한 도구로 여기며 살아가는 크리스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금융시장이 극도로 발달해 있는 요즘,
돈이 돈을 벌고 대규모의 자본이 없이는
최소한의 생계마저도 어려운 3세계 국가들의 개발이나
지원 또한 어려울 터인데, 어떤 모습이 크리스챤으로서
거리낌 없는 태도일지...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4/23 00:14
찬빠 /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자는 청지기의 모습이죠. 하나님의 돈을 잠시 맡아서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는 종 말에요. 요즘 지탄받고 있는 헌금도 실은 신앙고백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겁니다. 이 돈은 하나님이 주신 돈이며, 그래서 일부분을 바침으로써 이 돈의 소유주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거지요. 그 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을 바로 알아야 돈의 쓰임새도 바르게 정립되지 않겠어요?
Commented by 찬빠 at 2008/04/29 15:42
교회 소모임에서 교제할때마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사회/세계 전체에 대한 크리스챤의 책임감 등에 까지 미치면,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경제정의 등 개인적
윤리를 뛰어넘는 고민과 연구들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 및 실천 방안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구요. 이를 위한 공동체적인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나 행동방안도 필요하구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이란 책이 그나마 쉽게 읽을수 있는 좋은
이론적 백그라운드를 주는것 같더군요. 이미 읽으셨을거 같긴하지만..ㅋ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언어는 '지금, 여기서' 화육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장의 언어로..
by 어른이 2007 Egloos top100
Calendar
카테고리
문한별 칼럼(2008)
문한별 칼럼(2007)
문한별 칼럼(2006)
문한별 칼럼(2005)
문한별 칼럼(2004)
문한별 칼럼(2003)
문한별 칼럼(2002)
문한별 칼럼(2001)
문한별 칼럼(2000)
교회개혁을 위한 묵상
성경공부(강의) 연재
한별의 시편
한자로 풀이한 성경
살아가는 야그
먹는 즐거움
issue hunting
crazy media
today's cartoon
all that sports
laugh with me
and so on....
김영호의 매운 정치훈수
하재근의 보다 나은 세상
정문순의 여성 플러스 문학
황문성의 감성사진 앨범
김종선의 부동산 비밀과외
최근 등록된 덧글
이 말은 상당히 미국의 ..
by Locke at 08/31
이영자씨 너무 말이 거칠..
by 음.. at 08/27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
by TNS at 08/19
예전 글이군요... 공모..
by 흠... at 08/19

by 엄마 at 08/17
이글을 복사해서 단 3군..
by ddd at 08/13
이대통령에게 너무나 안..
by 안영목 at 08/09
진짜 막장이네, 어떻게..
by 에구 at 08/08
ㅁ맛잇어 보이네요 위치..
by 영숙 at 08/06
와 정말 예쁘네요. 블로..
by 아톰 at 08/03
가 볼 만한 곳...


네오이마주
포토로그

바람 불어 좋은 날...
이글루 링크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