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5] 애굽으로의 도피와 사랑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게 내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2:13~15)

4-1. 한 아기가 태어났다. 황금으로 옷을 입힌 제국의 수도도, 호화로운 호텔방에 가로놓인 푹신한 침대도 아닌, 유대땅 베들레헴의 어느 초라한 마굿간 그 구유에서 스스로 사랑이신 분은 태어나셨다. 하늘의 뭇 별들과 동그란 달은 제 몸을 한껏 불태워 조명을 비추고 바람에 스치운 나뭇잎새와 풀벌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천사들의 합창마냥 아름다웠다. 거기에는 부모들의 따스한 눈길이 있었다. 보드라운 흙과 냄새나는 건초가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신 아기를 내려다보고 섰는 말의 경건한 고개짓이 있었다. 이 모양 그이의 나심은 정겹고 평화로웠다.

4-2. 그러나 이 평화도 잠시 뿐.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아기 예수와 그 부모는 애굽으로 도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태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한다 :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2:14~15) 여기서 마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호 11:1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애굽피신과 그곳에서 돌아오심을 예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태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애굽도피와 그곳에서의 귀환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애굽의 종살이와 그곳으로부터의 해방에 대응하는 사건으로 비쳤다는 말이다.

4-3. 예수 그리스도는 애굽으로 도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치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처럼. 헤롯이 죽자 예수 그리스도는 애굽에서 돌아 오셨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사건은 출애굽을 전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동일하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그 일들을 '반복' 혹은 '재연'(Recapitulation)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신 그리스도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4-4.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실찐대 그들의 모든 수치와 괴로움에까지 참여하고 동참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애굽의 종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꿈에도 기억하기 싫은 가장 괴롭고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으리라. 그것은 백성들에게 열등감을 안겨주는 근원이었으리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애굽으로 몸소 도피하고 귀환하신 사건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까지 다가가신다. 마치 예리한 정신분석의처럼 그이는 그들의 어둔 과거를 거슬러 가신다.

그러나 그이는 사랑이시다. 그이는 백성들의 종살이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 들이신다. 여기에 사랑의 동일화가 있다. 여기에 사랑의 제 4 원리가 있다. "사랑에서 모든 과거가 극복된다. 과거의 수치와 부끄러움이 사랑 안에서 수용되고 해소된다." 노예생활? 그러면 어떤가? 그리스도는 그들을 사랑하신다. 그것이 사랑을 저해하는가? 천만에! 그리스도는 오히려 그들의 부끄러움을 당신 몸에 새겨 넣으신다.

4-5.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가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과거의 부끄러움마저도 사랑으로 치유된다. 이것은 용서라고 할 것도 없다. 이것은 차라리 동일화요 받아들임이다. 사랑은 상대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 설혹 그것이 제 아무리 부끄러운 것이라 할 지라도 - 제 것으로 전가시킨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일어난 일이 제 것이 된다. 사랑하는 이에게 일어난 일이 사랑받는 이의 것이 된다. 이러한 자유로운 교환에서 과거는 극복되어진다. 그러므로 사랑한다 하면서 과거의 흔적 때문에 고개를 흔드는 이여, 과거 때문에 도저히 사랑할 수 없노라고 말하는 이들이여, "쉬~~~!"



- 어른이 -
by 어른이 | 2007/04/25 23:21 | 성경공부(강의) 연재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iandyou.egloos.com/tb/16609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언어는 '지금, 여기서' 화육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장의 언어로..
by 어른이 2007 Egloos top100
Calendar
카테고리
문한별 칼럼(2008)
문한별 칼럼(2007)
문한별 칼럼(2006)
문한별 칼럼(2005)
문한별 칼럼(2004)
문한별 칼럼(2003)
문한별 칼럼(2002)
문한별 칼럼(2001)
문한별 칼럼(2000)
교회개혁을 위한 묵상
성경공부(강의) 연재
한별의 시편
한자로 풀이한 성경
살아가는 야그
먹는 즐거움
issue hunting
crazy media
today's cartoon
all that sports
laugh with me
and so on....
김영호의 매운 정치훈수
하재근의 보다 나은 세상
정문순의 여성 플러스 문학
황문성의 감성사진 앨범
김종선의 부동산 비밀과외
최근 등록된 덧글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
by TNS at 08/19
예전 글이군요... 공모..
by 흠... at 08/19

by 엄마 at 08/17
이글을 복사해서 단 3군..
by ddd at 08/13
이대통령에게 너무나 안..
by 안영목 at 08/09
진짜 막장이네, 어떻게..
by 에구 at 08/08
ㅁ맛잇어 보이네요 위치..
by 영숙 at 08/06
와 정말 예쁘네요. 블로..
by 아톰 at 08/03
..
by 프리 at 07/24
씨발 엘프새끼들아 니네..
by 프리 at 07/24
가 볼 만한 곳...


네오이마주
포토로그

바람 불어 좋은 날...
이글루 링크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