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신문들의 탈선
스포츠신문을 들여다 볼 때마다 나는 헷갈린다. '스포츠'신문이라면서 스포츠와 무관한 연예.오락물을 마구마구 퍼날르는 것이 어지럽고, 명색이 스포츠'신문'이라면서 '찌라시'에 버금가는 낯부끄러운 짓을 버젓이 행하는 것이 또한 황당한 탓이다.

내가 아는 상식으론 '스포츠'신문은 스포츠 보도를 주목적으로 하는 신문이다. 사전적 의미가 그렇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스포츠신문은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사와 신변잡기를 추적하는 허접하고 음란한 황색지로 변질되고, 스포츠기사들은 구색을 맞추는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례로 11월 20일자 <굿데이>를 살펴 보자. 전체 32면 가운데 스포츠 관련 기사는 지면의 1/4 수준인 9면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엔터테인먼트, 방송.미디어, 영화, 음악, 에로, 만화, 공연소식 등 스포츠와 전혀 무관한 것들이다.(이 중에 만화면만 무려 4개다.) <스포츠투데이>도 마찬가지. 스포츠기사에 할애된 지면은 전체 32면의 25%에 해당하는 8면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물어보나마나다.

스포츠신문의 한심스러움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1면이다. 이날자 <굿데이>의 1면탑을 장식한 것은 '탤런트 음정희의 이혼 소식'이었고, <스포츠투데이>의 1면을 장식한 것은 "사랑해야 섹스"한다는 탤런트 이승연의 '솔직고백'이었다.

"사랑해야 섹스한다"는 이승연의 말 한마디가, 그리고 탤런트 음정희가 이혼했다는 소식이 스포츠신문의 1면을 통채로 점령해도 좋을만큼 그렇게 중요하고도 가치있는 기사거리인가? 이들 두 신문만 그런 게 아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밑도 끝도 없다. 최근의 것을 더 들어 보자.

12월 12일자 스포츠서울 1면을 큼지막하게 도배한 것은 영화배우 하지원의 팬티였다. 제목 또한 "앗! 팬티." 그 밑으로 "볼테면 봐! 충격노출"이란 부제가 딸려 있다. 내용인즉 '색'자로 시작하는 모 영화의 한 장면에 하지원이 양다리를 벌리고 팬티를 노출시키는 야한 장면이 나온다는 것. "팬티가 진짜 속옷인지 아니면 비키니 수영복인지" 눈이 벌개져서 덤벼드는 기자도 문제지만, 도대체 이처럼 엽기발랄한 기사를 1면에 과감히 편집하는 데스크들은 어떻게 생겨먹은 양반들인지 궁금하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국민들이 자신들처럼 여배우의 팬티만 훔쳐보는 그런 관음중환자들로만 보이나? 아무리 저질스러워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러고도 신문기자란 명함을 내밀고 싶을까?
 
기왕 말을 꺼냈으니 일간스포츠나 스포츠조선도 마저 살펴 보자. 12월 10일자 일간스포츠의 1면이 뭔지 아시는가? 탤런트 성현아의 '충격누드'다. 일간스포츠는 친절하게스리 누드사진도 몇장 곁들였다. 누드사진을 우려먹기는 스포츠조선도 마찬가지. 12일자 스포츠조선(인터넷판)의 첫머리에 벌거벗은 성현아가 도발적인 포즈로 엎드려있는 사진이 올려져 있고, 그 옆으로 "돈 내고 봐!"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게 스포츠신문인가 아니면 유료 포르노사이트인가?

스포츠신문은 스포츠신문다워야 한다. 흥미를 위해 영화·연극·오락·예능 등 대중 레저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을 수 없다지만 그러나 이처럼 주종이 뒤바뀌어서는 곤란하다. 물론 스포츠신문들도 나름대로 할 말이 없진 않을 게다. 비슷비슷한 성격의 신문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 각축하는 상황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노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사정일 뿐. 저질스런 찌라시들의 세 불리기 경쟁에 왜 온 국민이 휘둘려야 한단 말가.

정히 연예인들의 가십을 주요하게 다루고 싶거든, '스포츠신문'이란 간판을 떼고 '연예잡지'로 이름을 바꿔 달 일이다. '신문'을 욕보이고 '스포츠'를 볼모로 삼는 비루한 짓은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영화 '친구'에 나오는 말마따나 "그만하면 마니 묵었다 아이가"다. 그렇잖아도 요즘 대선바람에 놀아나는 '신문지 그 이하의 신문지들' 때문에 신문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그런 판에 공공연하게 탈선을 일삼는 스포츠신문들을 보니 아무리 '심심풀이 땅콩'이요 '지하철 땜빵용'이라고는 하나 괜스레 민망해짐을 금할 길 없어 이렇게 입 바른 소리 한번 해 보는 것이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마는....  (2002.12.12)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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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인데, 신문시장의 형편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듯 하여 다시 올립니다. 당시 연합뉴스에서 제 기사를 인용하여 스포츠신문의 문제점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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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 2007/04/18 03:31 | 문한별 칼럼(2002)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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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기랄 at 2007/04/20 15:00
ㅋㅋ먹고살기 힘들어요..ㅋㅋ
이 또한 마케팅이라 봐야하나???ㅋㅋ
이름을 연예스포츠신문이라 해야한다고 생각하긴 했는데..ㅋㅋ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7/04/20 21:49
그렇죠. 마케팅의 일환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본말이 전도돼선 곤란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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