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규 국정원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1. 조선일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 때…

김승규 전 국정원장, 그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부적격자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그가 신임 국정원장으로 내정됐을 때, 동아일보는 "국가정보업무 총괄책임자를 '일을 위한 적임'이라기보다 '정치적 고려상의 적임'으로 고른 셈"이라며, " '호남민심 추스르기'의 일환" 내지는 "벽돌 바꿔 끼우기"식 인사라고 비아냥대기를 마지 아니하였다.(사설, <청와대 인사추천회의 '그때그때 달라요'>, 2005.6.18)

그는 또한 부적격자일 뿐만 아니라 거짓말장이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그가 현직 국정원장 신분으로 정보위에 출석해 "DJ 정부 시절 불법도청이 있었지만 대부분 마약과 테러 등 국제범죄와 관련된 것이며 과거와 달리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고 증언했을 때, 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이 말은 모두 거짓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크게 나무랐을 정도로.(<이 정권은 도청이 없나>, 2005.11.18)

나아가 그는 부적격자에다 거짓말장이일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고 무능한 사람이기까지 했다. 지난 7월, 북한이 동해상을 향해 7발의 미사일을 날렸을 때 그는 상황파악도 못한 채 외국에 나가 있었고, 석달 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그는 "이상 징후 없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중앙일보는 당시 사설에서 "노 대통령은 국민 앞에 철저하게 사과하고 현 외교안보 진영을 교체해야 한다"고 강하게 질책했다.(<북한 핵 앞에 벌거벗은 한국 안보>, 2006.10.10)

그런데 이처럼 부적격자에다 거짓말장이요 무능 &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보수신문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던 김승규 국정원장의 주름진 인생이 다림질하듯 한 순간에 쫙 펴지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름하여 '일심회 사건'이라 불리는 '386 간첩 의혹' 사건이 바로 그것. 북핵 사태 이후 만신창이가 된 외교안보라인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려는 시점에 때맞춰 터진 이 사건으로 인해 김승규 원장은 일약 보수세력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총아로 거듭나게 된다.

2. 조선일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와중에 이뤄진 조선일보와의 단독인터뷰(2006.10.30 보도)는 김 원장의 인생역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풍경이라 할 만 하다. '부적절한 만남'으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른 인터뷰 자리에서 김 원장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고정간첩이 연루된 간첩단사건으로 본다....차기 국정원장은 정말 중요하다. 거론되는 일부 인사는 코드를 맞출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안 된다...." 운운.

▲ 조선일보 10월30일자 3면에 실린 김승규 국정원장 단독인터뷰 기사

애시당초 '음지에서 일한다'는 국정원장이 양지 바른 교회에서 기자를 만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현 정부를 못 잡아 먹어 안달하는 조선일보 아닌가. 거기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국정원장이 나서서 제 멋대로 성격을 규정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월권적 발언까지….

김 원장은 마치 작심한 듯 조선일보가 기뻐할 만한 내용들만을 골라 서슴없이 입 밖으로 내보냈고, 이후 그에 대한 보수세력의 시선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부적격자에다 거짓말장이요 무능 & 무책임한 사람에서 붉으스레한 좌파정권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롭게 대한민국 안보를 걱정하는 푸른 빛의 우국지사로.

이쯤해서 그에게 던져진 헌사들을 몇개만 간추려 감상해 보자.

먼저 조선일보. 한 해 전만 해도 그를 '거짓말장이'로 몰아부쳤던 조선일보는 '간첩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그에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전별금을 돌려보낼 만큼 청렴하고 사심(私心)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는 아름다운 촌평을 하사했다. '전두환 찬가'를 방불케 하는 놀라운 반전 아닌가.(<김승규 국정원장은 / 국정원 '자기반성' 앞장>, 2006.10.30, 3면)

"외교 안보진영을 교체해야 한다"고 볼륨을 높였던 중앙일보는 "김대중 정부 이래 약화돼 온 대공업무에 대해 김 원장은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치켜세우며 "대통령은 '말을 갈아타는 오해'를 피하고 공안업무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김 원장 교체를 재고해야 한다"고 음색을 조정했다.(사설, <간첩사건 와중에 왜 국정원장 경질하나>, 2006.10.28)

김 원장이 국정원장에 취임했을 때 '부적격 인사'라고 비난했던 동아일보는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민주노동당 전현직 간부들을 적발한 것은 그의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의 '핵 장난'으로 가슴 졸이는 국민은 국정원이 제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스포트라이트'를 퍼부었다.(<'안보 최전방' 든든한 수장>, 2006.10.27, 34면)

▲ 동아일보 10월27일자 34면에 실린 <스포트라이트>

뿐이랴. 조중동의 우군이라 자처하는 한나라당 또한 김승규 국정원장을 경질하라던 기존의 주장을 접고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막중한 수사를 하는 국정원장을 지금 경질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지금은 김 원장을 격려하고 독려해야 할 때다"(정형근 의원의 말)고 응원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김 원장에 대한 최고 최대의 찬사는 그러나 다른 데서 나왔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10월30일자 시론 <간첩사건, 단호하게 그러나 오버말고>에서 김승규 원장에게 '의인'이라는 극진한 칭호를 선사했다. '오버하지 말라'던 신 대표의 '오버'를 직접 들어 보시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는 찬미가 이만할까.

"언제부턴가 우리의 국정원은 심하게 변질됐다. 간첩 잡기를 포기한 정보기관은 국민의 세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 그 죽었던 기능이 기적같이 되살아나고 있다. 자리 유지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의 핵심기능을 부활시킨 김승규 원장, 역사는 그를 의인(義人)으로 기록할 것이다."

3. 맺음말 : 역사는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김승규 국정원장, 그는 이전에 부적격자와 거짓말장이, 그리고 무책임하고 무능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간첩단 사건' 이후 조선일보가 그를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보수세력에게 다가가 "청렴하고 사심이 없으며", "대공업무에 대해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임해 온 "기적"의 주인공이자 "의인"이 되었다.

충격적인 인생역전만큼이나 BC와 AD의 골이 깊은 김승규 국정원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역사는 과연 어떻게 기억할까? 아니, 한 인간을 '거짓말장이'에서 '의인'으로 단숨에 변화시키는 언론의 전능을 역사는 과연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2006.11.2)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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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6년 11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어른이 | 2008/03/12 16:44 | 문한별 칼럼(2006)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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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ERIDOT at 2008/03/12 17:20
...저건 뭐래요?
Commented by 炎帝 at 2008/03/12 17:21
나관중이 형님이라 부를 경지군요.
(공손찬이나 도겸처럼 유비랑 연관된 인물들의 실제 역사를 보면 참으로 파렴치하기 그지 없죠.)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3/12 17:44
炎帝 / 그런 것들을 잘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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