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조율.1]

며칠 전 경주에서는 오랜만에 성덕대왕 신종(일명 에밀레종)이 울렸다. 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지난 92년 제야의 종 이후 타종을 중단한지 9년만의 일이다. 천년의 숨결을 품고 은은히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한 순간 내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꼈다.

에밀레종소리는 깨달음을 주는 소리 곧 진리의 원음(圓音)이라 불리운다.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고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해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 부처님께서 특별히 신종을 달아 진리의 둥근소리를 듣게 하셨다는 것이다. 종의 몸체에 새겨진 1000여 자의 명문에 나온 말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로 유명한 유홍준은 이 종에 대해 말하기를 "에밀레종은 인간이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유물이 아니다. 에밀레종 이전에도 없었고 에밀레종 이후에도 없는, 오직 에밀레종 하나가 있을 따름이다"고 극찬했다. 과연! 에밀레종만이 간직한 현묘한 울림과 독특한 맥놀이현상을 어느 나라에서 감히 흉내내며 복제할 수나 있겠는가.

에밀레종은 세상을 구원하는 종이다. 어둠을 물리치고 진리를 설법하는 깨달음의 도구다. 번뇌 가득한 인간의 가슴을 틔우고 정신을 맑게 하는 소리다. 새벽 6시를 기해 에밀레종을 세번 타종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율.2]

불행하게도 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종소리다. 내 귀에 익숙한 것은 조종소리, 곧 죽은 자를 애도하는 소리다. 영상과 지면을 통해 강제적으로 내 고막을 뚫고 들어와 끊임없이 나의 감성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전율케 만드는 그 소리에 대해 영국의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人間은 大陸의 한 조각이며, 大洋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領地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鐘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鐘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죤 던(John Donne, 1572-1631)이 지은 "임종의 기도"라는 시 가운데 한 대목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라는 헤밍웨이의 소설제목이 여기에서 착안된 것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죤 던이 노래하고 있는 종이 죽은 사람을 위해 울리는 조종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또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는 시의 내용을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오늘도 나는 조종을 듣는다. 폭죽처럼 사방에서 터지는 종소리를 듣는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들려오는 무고한 자들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정의와 자유의 이름 아래 스러져가는 숱한 주검들을 듣는다. 테러와 보복전쟁으로 이어지는 "항구적인 죽음"을 듣는다. 그 소리만큼 나는 작아지고, 지구의 살점은 찢겨져 나간다. (2001.10.12)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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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1년에 <오마이뉴스>와 <인터넷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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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 2008/03/03 18:18 | 문한별 칼럼(2001)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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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무귀신 at 2008/03/04 01:03
안녕하세요? 정말 오래간만에 찾아 뵙습니다.
저는 군제대후 조금놀다가(..) 미국에 어학연수를 와 있습니다.
어른이님 이글루사이트 엊그제 찾아서 새벽되도록 칼럼읽고 이제야 안부를 드립니다.
아직도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시네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3/04 01:22
나무귀신 / 오래만이네요. ^^ 제대한지 얼마 안 되신 걸로 아는데, 미국 가셨군요. 좋은 성취 이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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