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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노한다. 지하철에 강아지를 안고 탄 아가씨에게 분노한다. 강아지가 '실례'한 물똥을 치우지 않고 도망치듯 내린 '개똥녀'란 이름의 그 아가씨에게 분노한다.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면서 강아지가 실례한 물똥을 치워야 하지 않느냐고 꾸짖는 아줌마에게 욕설까지 퍼부은 '4가지' 없는 '개똥녀'에게 분노한다. 분노하고 분노한 나머지 우리는 개똥녀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몰매를 가한다. 살벌한 댓글과 온갖 합성사진으로 그녀를 비꼬고 욕하고, 내친 김에 그녀가 다닌다고 소문난 학교에까지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아, 씨바, 정의는 살아있다~!
우리는 분노한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여자친구와 히히덕거린 학생에게 분노한다. "좀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뭘 그렇게 꼴아봐, X새끼야" 란 욕설과 함께 주먹을 날려 안경까지 깨뜨린 '철사마'란 이름의 그 학생에게 분노한다. 분노하고 분노한 나머지 우리는 철사마의 실명과 사진을 만인에게 회람시키고, 안주 대신 그를 씹는다. 철사마와 함께 있던 여자친구도 우리의 분노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커플사진이 광속으로 나돌고 그들은 저주받은 한쌍으로 낙인찍힌다. 아, 씨바, 정의는 살아있다~! 우리는 분노한다.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한 여성을 매몰차게 버린 한 남자에게 분노한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뺨 세대를 맞았다고 해서 경찰에 신고한 김씨 성을 가진 그 남자에게 분노한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의 빈소 앞에서도 향불 하나 피우지 아니한 잔인한 그 남자에게 분노한다. 분노하고 분노한 나머지 우리는 그의 전화번호, 직장까지 적힌 신상명세를 공유하며 그를 심판한다. 한 인간을 망가뜨린만큼 그의 인생도 철저히 망가져야 한다. 직장을 그만 두고 잠적하거나 말거나. 아, 씨바, 정의는 살아있다~! 우리는 분노한다. 군대를 기피한 유승준에게 분노한다. '아름다운 청년'으로 행세해며 금방 군대 갈 것처럼 떠벌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인으로 옷을 바꿔 입은 유승준 아니 스티브 유에게 분노한다. 분노하고 분노한 나머지 우리는 스티브 유를 '매국노'로 부르며 그를 손가락질한다. 물론 그의 입국은 당근 결사반대다. 그의 그림자가 한국땅에 얼씬거리는 것조차 우린 눈뜨고 못 본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케이블채널에서 다큐로 방영되는 것은 더더욱, 거짓말하고, 병역을 거부하고, 미국인이 된 스티브 유는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한국땅에 못 들어 온다. 아, 씨바, 정의는 살아있다~! 우리는 분노한다. 위안부를 주제삼아 누드사진을 찍은 이승연에게 분노한다. 돈 몇 푼 더 벌기 위해 민족의 한이 맺힌 위안부마저 누드의 소재로 삼은 '천박한 탤런트' 이승연에게 분노한다. 분노하고 분노한 나머지 우리는 이승연에게 온갖 폭언과 저주를 던진다. '민족을 팔아먹은 년'에서부터 '쪽빠리들의 노리개'까지 우리가 준비한 욕설의 레파토리는 다양하다. 그녀가 사진을 다 불사르고 위안부 할머니 앞에 무릎꿇어 거듭 거듭 사죄해도 우리의 분노는 좀체 풀리지 않는다. 한번 불 붙은 우리의 분노를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아, 씨바, 정의는 살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정권욕에 사로 잡혀 제 나라 국민을 총칼로 짓이긴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29만원 밖에 없다는 '극빈자' 전두환이 골프채를 휘두르며 희희낙락거려도 우리는 분노할 줄 모른다. '죽인 자도 없이' 애꿎게 망월동에 누워있는 수백구의 억울한 주검들 앞에서도 우리는 좀체 분노하지 않는다. 41조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10조원의 불법대출을 받아 나라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장본인 김우중의 귀국소식을 듣고도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나라를 망친 죄인이 금의환향하듯 컴백해도 우리의 아드레날린은 마냥 무사태평하시다. 우리는 또한 분노하지 않는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사자후를 일면톱으로 보도하고 일본 천황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매국지 조선일보가 '민족지' '독립언론'을 참칭해도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한일합방은 동양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떠벌인 친일잡지 '조광'의 후신인 '월간조선'이 메카시의 칼날을 번뜩이며 이념조작을 일삼아도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입으로는 '시장경제'를 외치며 뒷구멍으로 불법경품을 남발하고 다시 그 뻔뻔한 얼굴로 신문법을 매도하는 부자신문지들을 보고서도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그 신문지들이 민족의 안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국의 목소리만을 대변해도 우리는 절대 분노하지 않는다. 왜? 우리의 분노는 만만하고 연약한 상대 앞에서만 효력을 발휘하니까. 익명 뒤에 숨어 배설하는 우리의 분노는 무책임한 놀이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위안부 누드를 찍은 이승연은 비난할지언정 친일의 오욕은 청산하려 하질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군대를 기피한 유승준을 비난할지언정 기득권층의 몰염치와 배반적 행태에는 눈을 감는다. 그래서 우리는 철사마, 김씨, 개똥녀에게 분노하고 분노하면서도 수많은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에는 여전히 관대하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들에게는 놀랍도록 무심하다. 아, 씨바, 정의는 정말 살아있다니까~! (2005.6.10) - 어른이 - ------------------------------------------------------------------------------------------ *** #.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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