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 인상' 파동···가장 돋보인 <조선> 타이틀


- 이러니 가난한 서민들이 <조선일보>를 많이 보지.

언론개혁운동을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문제 중의 하나가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자신문''친기업신문' <조선일보>를
가난한 서민들이나 노동자들이 상상외로 많이 본다는 사실이었다.

왜 그럴까?
우선 생계에 지쳐 언론문제에 신경 쓸 겨를 없는 삶의 고단함 때문이기도 할 게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뒤늦게 진실을 알고서 깜짝 놀란 이들도 많았으니까.

사실 <조선>의 친일이나 친독재 전력을 바로 아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온라인에서 자주 거론된다 하여 오프에서도 잘 알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민족지' 내지는 '정론지'로 착각.오해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그 이유 뿐일까? 단순히 독자들의 무지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조선>이 정치면과 나머지 지면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것도 또한 고려할 수 있겠다.
독자들 가운데는 정치면은 안 보고 문화나 경제면만 본다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사실 한 몸뚱아리로 여러 색깔을 내는 재주에서 <조선>을 따라갈 자가 없다.
<조선일보> 말고 어느 신문이 정치면을 통해서는 기득권을 수호하는 수구의 목소리를,
그리고 문화면을 통해서는 진보의 목소리를 이처럼 동시에 & 멋드러지게 낼 수 있겠는가. 

그러면 이게 전부일까? 서민들이 <조선일보>를 놓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없을까?
있다! 바로 <조선일보>의 최대 강점으로 손꼽히는 탁월한 편집술이다.
'부자신문'이면서도 서민 눈높이에서 제목을 뽑는 <조선>의 솜씨는 확실히 남다른데가 있다. 

최근 라면, 스낵류, 주스, 우유 등 서민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품값이 크게 올랐다.
국제 원자재 값이 급등해 어쩔 수 없다지만,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만 죽을 맛이다.
2월 19일자 중앙일간지는 이 소식을 빠짐없이 보도했다.

먼저, 서민들 심정을 누구보다 잘 대변해 줄 것 같은 <한겨레>와 <경향>을 보자. 
<한겨레>는 "라면.주스.유제품값 줄줄이 인상"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경향>도 비슷하게 "라면.식음료값 줄줄이 올라"라고 제목을 달았다.

▲ 2월 19일자 <한겨레> A2면
▲ 2월 19일자 <경향> A18면

봤다시피, 생필품값 인상을 전하는 <한겨레>와 <경향>의 타이틀은 지극히 건조하다.
중요한 정보만 간략히 & '줄줄이' 나열했을 뿐, 거기에 어떤 표정도 담겨 있지 않다.
이들 신문에 비하면, 말장난을 이용한 <국민일보>의 제목잡기가 더 신선해 보인다.

▲ 2월 19일자 <국민> A14면

<국민일보>는 물가인상과 서민 한숨의 상관관계를 동음이의어 '고'로 풀이했다.
생활물가가 오를 수록(高), 주부들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짐(苦)을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의 경직된 타이틀과는 사뭇 달라 보이지 않는가.
 
▲ 2월 19일자 <한국> A1면 우측하단

그런가 하면, <한국일보>는 물가인상의 핵심이랄 수 있는 '라면'에 포인트를 맞춰 
"울고 싶어 / 너도 오르"이라고 시적인 제목을 달았다.
'라'와 '면'으로 끝나는 다섯음절의 말을 이용해 감정을 포착해 낸 것.

▲ 2월 19일자 <동아> A13면

<한국일보>가 '울고 싶은 서민의 슬픔'에 초점을 맞춰 제목을 달았다면,
<동아>는 타이틀을 철저하게 주부에게 어필하는 쪽으로 잡았다.
무심코 과자를 집어 들었다가 오른 가격 때문에 깜짝 놀라 내려놓는 주부의 모습이 생생하다.

▲ 2월 19일자 <조선> E3면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날자 신문 가운데 가장 돋보이게 제목을 단 것은 <조선일보>다.
가장 싼 값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은 서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다.
그런데 이마저 인상되다니, 그러면 서민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라면값 너마저..."

<조선>의 짧은 타이틀 안에는 이 모양 생계 어려운 이들의 눈물겨운 스토리가 녹아 있다.
연즉, 가난한 이들이 어찌 그를 읽고 공감하지 아니하며, 나아가 하고 많은 매체 가운데
<조선>만이 자기들 심정을 알아주는 냥 그리 착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사실 언론재벌 <조선일보>와 서민의 생필품인 '라면'은 썩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런데도 물가인상 앞에 작아지는 서민의 눈높이에서 제목을 뽑아내는 상상력이라니~!
<조선>의 강점은 이모양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수용자 입장에서 말할 줄 안다는 거다.

지난해 인질석방 국면에서도 <조선>의 1면 편집이 가장 돋보였음을  지적한 바 있거니와,
제목 하나 뽑는데 있어서도 <조선>의 섬세함은 이처럼 타신문을 능가한다.
<한겨레><경향>과 <조선>의 타이틀을 비교해 보라. 어느 것에 더 눈길이 가는가?

http://iandyou.egloos.com/609729

신문의 정체성을 따져볼 때, 서민들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건 <한겨레>와 <경향> 맞다.
그러나 개별적인 기사에서 서민들의 정서를 가장 잘 다둑거리는 건 외려 <조선>이다.
작금의 '물가인상 파동'은 이것을 실증적, 웅변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 감정선을 건드려 독자를 선동하고, 소설적 상상력으로 기사를
욕되게 하는 것 등은 <조선>의 치명적인 결점으로 손꼽히는 것들인데, 그것들이 외려
가난한 서민들로 하여금 <조선>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니...

아하.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가 나온 것인가? (2008.2.20)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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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차>에 올려진 自由魂 님의 글 <'서민'을 대변하는 신문?>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by 어른이 | 2008/02/19 14:49 | 문한별 칼럼(2008) | 트랙백 | 핑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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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보는 공감받은 공감하는 친구들은 &larr; 2008년 2월 1 2 4 7 8 10 12 14 16 18 20 20 Feb 2008 0 metoo "'라면값 인상' 파동···&lt;조선일보&gt; 제목이 가장 돋보였다!" "감정선을 건드려 독자를 선동하고, 소설적 상상력으로 기사를 욕되게 하는 것"이 "가난한 서민들로 하여금 &lt;조선&gt;을 친근하게 느끼 ... more

Commented by 炎帝 at 2008/02/20 08:27
조중동이 그렇게 막장이냐는 질문을 했을때,
조선은 그래도 글은 잘 쓰는데 동아는 그것도 못한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조선에서 먹물먹은 사람이 많다나... 상한 먹물이라 문제지만...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20 08:31
炎帝 / 월급 가장 빵빵한 곳이 <조선>입니다. 가방끈 긴 인간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것도 <조선>이고요. 그네들이 그렇게 막장은 아니에요. 기사작성이라든지, 편집의 감각은 뛰어나죠. 영혼이 썩어서 그렇지...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8/02/20 08:35
국민일보 기사 보고 高와 苦가 형용사라는 걸 문득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 쓰는 한문은 잘 모르겠지만, 중국어에서 두번 쓰면 강조의 의미라나...)

아 그리고 현물 제공 역시 한몫 톡톡히 합니다.(간혹 한겨레신문에 구독전화 오면 가끔 "뭐 주는거 없어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Commented by 휴이 at 2008/02/20 08:43
저희집은 아버지께서 과거 경향신문 기자출신에 조중동이 내세우는 이념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집인데도, 구독하는 신문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매일경제입니다. 왜 그런지는 여쭈어보지 못했습니다만...
Commented by 無名공대생 at 2008/02/20 08:45
이런 점에서 점수를 먹고 이야기하니 서민들에게 먹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리한 것은 쏘옥 빼주는 센스......

'나는 정답을 향해 달리고 있다. 빨갱이 노빠, 좌파들을 몰아내야 한다.'

이렇게 되는 것도 그런 점에서가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부분입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2/20 09:07
2MB 취임 후 일년만 지나면 저 신문들의 스탠스가 확 바뀔겁니다. 지금까지는 놈현정부 최대의 아킬레스건이 세금과 물가였으니까요.
Commented by oO천랑Oo at 2008/02/20 09:33
저는 한겨례가 맞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장재천 at 2008/02/20 09:59
양의 탈을 쓴 늑대도 아니고, 서민지의 탈을 쓴 반서민지네요. =.=
Commented by PERIDOT at 2008/02/20 11:16
에라이 잡것 좆선일보
Commented by 역성혁명 at 2008/02/20 13:54
으음 민족지가 아니라 다중인격지였군...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20 15:24
제갈교 / 몇 년 전에 한겨레 구독하겠다고 전화했더니 그족에서 무가지를 2개월 넣어주겠노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직원을 엄히 꾸중했습니다. 한겨레마저 그딴 짓을 하면 어떡하느냐고... 독자가 거지로 보이냐고...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20 15:25
휴이 / 그것 참 미스터리한 일이로군요.^^; 나이가 드시면서 보수화되는 면도 무시할 수 없을 듯 합니다. 한번 물어보시지 그러세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20 15:26
無名공대생 / <조선>의 간교함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걸 다 지적하자면 책을 써야 겠죠.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20 15:29
rumic71 / <조선>이 신경쓰는 건 나라가 아닙니다. 2MB 정부 하에서 어떻게 수위를 되찾느냐 그것 뿐이죠. 신문논조의 변화는 이런 상술에 따라 결정되는 부수적인 사안에 불과해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20 15:30
장재천 / 그렇죠. 그리고 문제는 그런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것...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20 15:31
역성혁명 / 과거를 부정하는 다중인격자... 그게 <조선>이죠.
Commented by 티에프 at 2008/02/22 04:33
뭐랄까. 확실히 편집의 묘미는 조중동이 좋긴 좋네요. 한겨레는 무지 심심해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22 05:40
티에프 / 조중동 중에서도 <조선>이 제일이지요. 편집솜씨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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