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오보소동에 대해 <중앙>이 사과를 하긴 했는데...


우리나라 신문들은 사과에 인색하다. 인색하기로 세계 최고다.

잘못된 보도로 언론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독자를 기망하고도
그 다음날 눈에 거의 띄지도 않는 2면 하단의 '바로 잡습니다' 코너를 통해
정정보도 하는 시늉만 겨우 낸다. 그게 전부다.

14일 중앙일보가 초대형 오보를 냈다.
철지난 스위스 사진을 금년 2월의 '꽁꽁 언 중국' 사진이라며 1면 상단에 내건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메이저신문의 오보소동에 네티즌들은 혀를 찼다.

▲ 2월 15일자 2면 하단의 '바로 잡습니다' 코너에 자리한 사과문

다음날인 15일, 중앙일보가 이 사진에 대해 정정보도를 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2면 하단의 '바로 잡습니다' 코너가 이용됐다.
잘못은 1면 상단에서 크게 치고, 교정은 2면 하단에서 하는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그래도 이참에 워낙 큰 오보를 저지른 탓인지, 다른 때보다 공간이 커진 게 위안꺼리다.
문제가 된 기사가 사진이다보니 어물쩍 말로만 처리하고 넘어가기가 곤란했겠지.
게다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나 지켜보는 눈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겉포장은 분명 '사과'인데, 내용을 뜯어 보면 사과는 없고 어줍잖은 변명만 난무한다.
"중국의 취재원이 12일 밤 사진을 보내왔다... 중국의 대형 포털에 올려진 사진이다...
함께 있던 사진들이 중국의 것이 분명해서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운운.

국화꽃 한 송이 피기 위해 봄부터 천둥치고 소쩍새 울 듯, 1면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도
여러 단계의 게이트키핑을 거치는 법. 그러나 <중앙>은 출처불명 사진을 끝까지 추적
확인하지도 않은 채 이를 덜컥 1면에 올리고도 "사과한다" 한 마디로 간단히 떼운다.

덕분에 독자들은 누가 언제 찍은지도 모르는 미확인사진을 메이저신문 1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를 갖게 됐으니, 이를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출처분명의 사진을 무단 사용한 것도 입 닫고 은근슬쩍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 소동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건 역시 지면배치다. 
<중앙>이 사과문을 오보사진이 걸렸던 1면 우측상단 그 자리에 실었으면 어땠을까.
제 잘못을 떳떳이 시인하고 바로 잡는 모습을 통해 외려 이미지가 업(Up)되지 않았을까.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지난 2004년, 이라크 침공 기사를 내보내면서 검증 없이 한 쪽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왜곡.편파를 자행했다며, 사설로 자신의 허물을 가혹하게
도려냈다. 또 기사조작과 표절 사고가 벌어졌을 땐 1면과 4면에 사과문을 싣기도 했다.

말끝마다 뉴욕타임즈를 들먹이는 잘난 우리나라 신문들도 이런 모습을 가질 수는 없을까.
'일등신문'이니 '일류신문'이니 떠벌이기 전에 그 말에 걸맞는 품격을 갖출 순 없을까.
제 기사에 책임지는 신문다운 신문을 우리도 한번쯤 마주하는 행운을 누려 볼 순 없을까.

[Tip]

그래도 <중앙>은 <조선>.<동아>에 비해 비교적 사과를 잘 하는 축에 속한다.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과 자체에 알러지가 있는 건 아니란 얘기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를 안하는 신문으론 <조선>을 따리갈 자가 없다.
(2008.2.15)

 


- 어른이 -
by 어른이 | 2008/02/15 15:08 | crazy media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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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eneesi at 2008/02/15 06:35
조선은 잘못이 잘한거죠

그래서 어 이게 맞나? 야 이게 맞아? 어 그게 맞아 하면
아 그게 맞구나 되버리는
Commented by 장재천 at 2008/02/15 10:10
그렇죠. 조선은 따라갈 자가 없죠.
웹에서 조금만 검색해봐도 신문 제호 위에 일장기 붙어있는 거 바로 나오는데, 아직도 민족지라고 우기는 꼴 보면 좀 올곧고 지조있는듯.
Commented by 대건 at 2008/02/15 10:47
요즘 며칠 어머님댁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본가는 동아일보를 보고 있어요. 아마 이사하시고 제일 먼저 들이닥친 신문사였던듯 합니다.
뭐 암튼 그렇고, 요 며칠간 아침에 동아일보를 받아보면서 참 답답함이 많이 느껴지더군요. 제목 뽑는 센스하며, 기사 내용하며....
이거 빨리 끊어드리던가 해야지 싶더라구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15 12:19
대건 / 어머니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동아일보>를 속히 끊으셔야 할 텐데...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15 12:21
장재천 / <조선>은 일관된 신문입니다. "강자에겐 시정없이 굽신거리고, 약자는 가차없이 사냥한다"... 이런 원칙이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15 12:21
peneesi / 여론을 오도하고 왜곡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신문입니다. <조선>은...
Commented by dunkbear at 2008/02/15 14:09
조선일보 사과 합니다....

다만 사과문을 매우 작게, 가장 구석진 곳에 실어서 그렇지... ㅋㅋㅋ
Commented by 無名공대생 at 2008/02/15 15:47
CBS에서 오늘 라디오로 이 건 관련해서 알려줘서 알았습니다.
'담당기자의 실수다' 이정도로 이야기를 하던데, 정말 그렇군요.
Commented by 역성혁명 at 2008/02/15 17:32
사과를 한건지, 안한건지 햇갈립니다.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16 01:47
역성혁명 / 그게 그들의 특기지요. 사과를 하는 것 같긴 한데 왠지 뒤가 찜찜하다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16 02:12
無名공대생 / 실수도 실수 나름.... 과연 그게 담당기자만의 잘못일까요.-.-
Commented by 無名공대생 at 2008/02/16 08:55
제가 정말 그렇군요라고 말씀드렸던 건 정말 그렇게 말을 한다는 의미로
말씀드렸는데...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편집장까지의 통과선이 다 통과되었는데, 그걸 담당기자의 실수라고만
볼 수는 없으니까요. 공문서에서의 결재의 의미를 크게 두는 것과 같은 의미지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16 09:06
無名공대생 / 아뇨. 제 말은 님에게 한 게 아니라 님이 들었다는 CBS 멘트를 얌두에 두고 한 건데... 이거야말로 전달이 잘 안됐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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