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때문에 온 국민이 ‘저질화’ 되고 있다”굽쇼?


30일자 <조선닷컴>에 웃기는 기사가 하나 떴더군요. 천주교 서울대 교구 조규만 보좌주교가 “온 국민의 저질화가 ‘무한도전’ 때문”이라며 MBC 인기오락프로그램을 강도높게 비판했다는 거에요.

<조선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조 보좌주교가 지난 26일 서울지역 가톨릭 언론인들 모임인 ‘서울매스컴 위원회 창립대회’ 축사에서 최근 가수 나훈아의 괴소문 파동과 MBC ‘무한도전’의 인기절정 사례를 거론하며 매스미디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답니다.

그 가운데 조 보좌주교가 ‘무한도전’에 대해 말한 대목을 들어 보시죠.

“‘무한도전’을 시작할 초창기에 어떤 (TV)프로그램에 보니까, 한쪽에서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영재들이 투자와 투기에 대해서 구별하고 자신들이 돈이 1000만원이 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옆의 다른 TV에서는 30대 먹은 남자애들이 한 박자도 쉬고 두 박자 쉬고 놀이하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그게 벌써 인기가 돼 가지고 수도 없이 방영하고 그게 지금 우리나라 실정... 방송하는 사람들에게 돈도 좋지만 이렇게 국민들을 다 저질화시키는 것이 정말 당신들의 일인지 한번 묻고 싶다.”

그러니까 그의 말인 즉슨, 어떤 TV에서는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 녀석들이 영재랍시고 벌써부터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고 재테크를 구상하는 기특한 짓들을 하는데, 다른 쪽 TV에서는 30살도 넘은 어른들이 한박자 쉬고 두박자 쉬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바보놀음이나 하고 있는 꼬라지가 하 기가 막힌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불행히도 인기가 많아서 TV를 보고 있는 온 국민을 저질화시키고 있으니 이를 그대로 지켜볼 수 없어 부득이 사제복 걷어부치고 한 말씀 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조 보좌주교에게 오히려 묻고 싶네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녀석들이 돈 1,000만원 활용방안을 고민하는 게 그렇게 기특하고 아름다워 보입디까? 돈으로 물신을 삼고 부자되기 위해 안달하는 세속에선 그게 지혜로운 모습일 수 있어도 신앙으로 사는 사제마저 그렇게 말해야 합니까? 그게 아름다워 보인다면 조 보좌주교의 눈이 혹시 저질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 어디에도 돈을 잘 요리해서 부자되라고 권장하는 대목은 없습니다. 돈으로 자랑을 삼거나 사랑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책망하는 말씀은 수두룩해도 그를 부풀리기 위해 고민하는 것을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대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경을 가르치신다는 사제의 눈에 그딴 프로가 그리 아름답게 보였을까요?

바르게 말해서, 아이들이 거액의 돈을 갖고 고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 합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이나 연출하게 하는 TV는 정말 잘못된 TV입니다. 한창 뛰놀아야 할 대한민국 아이들이 그런 프로를 보고 따라하면서 투기와 투자를 고민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조 보좌주교가 생각하는 고차원스럽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로 그런 겁니까?

조 보좌주교가 비난해 마지 않는 <무한도전>만 해도 그렇습니다.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자랑하는' 6명의 젊은이들이 나와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리얼하게 해결해 가는 버라이어티한 오락프로입니다. 이들이 온 몸으로 만들어내는 순도높은 웃음 때문에 고단한 하루의 일상을 이기고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이들이 그야말로 부지기수입니다. <무한도전> 시청자게시판을 한번이라도 들여다 보셨습니까?

더 황당한 건, 조 보좌주교가 예로 든 프로의 내용입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하는 놀이는 무한도전 초창기에 했던 게임입니다. 한참 지난 프로를 들고와서 이제사 생뚱맞게 시비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것 때문에 온 국민이 저질화되고 있다고 호통치다니 이거 넘 심한 거 아닌가요? 혹 근거는 갖고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 온 국민이 그를 보고 같은 놀이를 하고 있으니 그게 저질화 아니냐구요? 그런 놀이라면 <무한도전>이 뜨기 전에도 TV만 켜면 사방에서 횡행했는데 왜 그때는 아무 말씀 없다가 이제사 뒷북치는 거랍니까? 

그리고 <무한도전>을 찍어 이것 때문에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저질화 된다고 단정하시는 것도 웃깁니다. 내 평소 가톨릭 신부의 영빨이 보통이 아니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렇듯 한 큐에 온 국민이 저질화된 원인을 짚어낼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조 보좌주교 말대로라면, <무한도전>을 당장 중단하기만 하면 그날로 이 나라의 국민이 갑자기 고질화되겠군요? 아니 그래요?

나는 어디에서도 <무한도전> 때문에 온 국민이 저질화 되고 그릇된 영향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무한도전>을 악착같이 까는 안티팬이라도 차마 그런 말은 못 할 것입니다. 그런 차에 조 보좌주교의 이같은 말씀을 들으니 아스트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거니와, 온 국민의 저질화를 그렇게 걱정하신다면 생뚱맞게 힘 없는 <무한도전>만 잡고 몽둥이질 하지 마시고, 재벌이나 권력의 눈치나 살피면서 그들의 후장 빨기에만 여념 없는 비루하고 저급한 한국 언론이나 바로 잡아 주세요. 그러면 아마 온 국민이 조 보좌주교에게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무리 '저질'이라도 그 정도는 능히 분별할 줄 알거든요. 

그리고 웬만하면 시간 내서 <무한도전>도 보세요. '저질스런' 국민을 구원하자면 같은 판에서 놀아야 하지 않나요? 그게 성육신의 참 의의 아니던가요? 영빨이 못 미치는 사람의 말이라고 무시하지만 마시고 부디 새겨 들어 주옵시기를... 갈망 열망 앙망하옵나이다. (2008.1.31)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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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 2008/01/31 13:07 | 문한별 칼럼(2008)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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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러빙이 at 2008/01/31 11:47
초창기에 그 영재들모아놓고 했다는 그 프로가 뭔지 궁금해지는데요 -_-?;;
참 기특하네요. ;;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1/31 12:23
러빙이 / 저도 궁금....그런데 <무한도전>에서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했을 때 만들어진 프로라면 워낙 오래돼서 알기 힘들 듯.
Commented by 어익후 at 2008/01/31 12:37
어른이 님 글은 언제나 읽기에 유쾌상쾌통쾌 하네요 ㅋ
Commented by 탐탐or고지마 at 2008/01/31 12:38
올만에 보는 천주교 신부의 뻘짓 이군요.
Commented by 우기 at 2008/01/31 13:21
천주교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런 분이 주교보좌라는게 심히 부끄럽습니다.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1/31 13:22
어익후 / 캄사합니다. ㅋㅋ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1/31 13:23
탐탐or고지마 / 그러게요. 입 다물고 가만 있으면 점수 따는 건데 분위기 파악 못하고 나서서 초치는군요. "기독교만 뻘짓하냐, 우리도 뻘짓할 권리가 있다"고 항변하시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난나야 at 2008/01/31 14:20
하여간 종교인들 속좁아요..보고 즐거우면 그걸로 만족하자..
Commented by 쩌비 at 2008/02/01 09:20
유머는 유머이고, 웃고 즐기면 그만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머가 철학적이고 좀더 교육적이며, 좀 더 진지하다면 뭔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웃길때 웃고나면 그만이라는 것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01 13:43
쩌비 / 몇몇 종교인들의 고답적 사고방식이 난 더 무서워요.
Commented by 어휴 at 2008/02/07 12:53
요즘 종교인들이 하는 행실을 보면 진짜 한숨만 푹푹 나오네요.
우연히 이오공감을 통해 들어왔다가 날카롭고 통쾌한 비판 많이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어른이님 글 기대하고 있을께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2/07 13:00
어휴 / 이렇게 익명으로 "앞으로도 기대한다" 하시니 더 무서워요. ㅎㅎㅎ 고맙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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