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광고’ 떡고물에 홀려 체면도 염치도 내던져버린 TV
요즘 TV가 염치를 잃었다. 중간광고란 떡고물에 마음이 홀려 양심이 줄줄이 가출한 탓이다. 뉴스시간을 이용해 저에게 유리한 일방광고를 스스럼 없이 내보낸다. 공정해야 할 뉴스를 자사 이익을 위한 홍보의 장으로 이용하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광고가 재미있다"는 식의 낯뜨거운 계몽도 서슴치 않는다.

지난 16일, 오후 8시에 방송되는 KBS2 뉴스타임에 희한한 뉴스가 떴다. 제하여 <‘기발한 광고’가 뜬다">. 얼마나 광고가 '기발'하길래 메인뉴스 시간을 쪼개서까지 소개하는 걸까?

눈 부릅뜨고 구경했더니, 예쁘장한 모델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치는 이른바 '엉짝댄스'로 재미난 빙과광고를 찍은 것이 재미나고, 국내에서 가장 빠른 랩을 구사하는 래퍼 아웃사이더를 기용해 45초 동안 110개국의 나라이름을 토해내는 광고를 찍은 것이 기발하며, 휴대전화 화면에 보이는 얼굴을 작게 만들기 위해 팔이 빠져라 쭉 뻗는 광고를 만든 것이 엉뚱하단다.

띄워주는 기사답게 화끈하게 광고를 '빨아주는' 아부성 멘트가 도처에 넘실거린다. "요즘 광고들 정말 엉뚱하고 기발한 경우가 많습니다....중독성 강한 엉짝댄스와 어우러져 재미난 빙과 광고로 탄생했습니다....기발한 상상이 만들어낸 엉뚱한 광고들!" 운운.

백미는 단연 기사의 클로징멘트다. "이들이 발산하는 엉뚱한 매력에 광고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세상에, 광고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까지 생기고 있다니! 광고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 말고, 그런 사람 있으면 제발이지 눈 앞에 대령해 주길 바란다.

이 정도는 그래도 애교다. SBS와 MBC는 한 술 더 떴다. '무늬만 공영' MBC는, 시청자들을 세뇌시키고야 말겠다는 듯, 11월 1일부터 무려 2주 동안 중간광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뉴스를 거의 매일 내보냈다.(1~3일, 6~10일, 12~14일) '민영 본색' SBS도 이 기간동안 다섯차례나 중간광고를 선전하는 뉴스를 내보냈다.(2, 5, 7~9일) 양 방송사 메인앵커들의 입을 통해 발음된 현란한 광고성 뉴스의 향연을 잠시 감상해 보자.

우선 MBC 뉴스데스크.

"선진국들의 TV는 물론이고 우리 케이블에도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가 나오는데 이제는 지상파 방송사들에도 중간 광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방송협회가 촉구했습니다."(1일) / "방송위원회가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중간광고를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디지털 전환 등 뉴미디어 시대로의 전환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방송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2일) /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에 대해 일부에서 논란이 있습니다마는 고품질의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게 방송위원회의 판단입니다."(3일) / "방송산업 규모는 점점 팽창하고 있는데 지상파 방송사의 재정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각종 특혜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케이블과는 대조적입니다."(6일)... 기타 등등.

중간광고를 띄우기 위해서 인기 절정인 '미드'도 소환된다.

"박진감 넘치는 화면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TV 드라마 '24'입니다.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의 중간에 광고가 들어가면서 구성이 더욱 치밀해 졌습니다...."(2일) / "최근 CSI 같은 미국 드라마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습니다. 엄청난 제작비에 구성도 탄탄한 이른바 미드 공세에 맞설 대책마련이 시급합니다...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드'의 저력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탄탄한 구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엄청난 제작비입니다...방송위원회가 신문협회 등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간광고 재도입을 결정한 것은 이 같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책의 일환으로 풀이됩니다."(7일)... 등등.

SBS의 경우는 더 노골적이다.

<중간광고 실시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나?>(2일)..."전체적으로 광고의 양을 적절하게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프로그램 중간에 휴식이 있게 될 경우 프로그램 각각의 부분이 탄탄한 구성을 갖게됩니다...따라서 시청자들은 한 차원 높아진 양질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습니다."

<외국은 중간광고 어떻게 하나?…이미 보편화>(5일)..."프랑스의 대표적인 민영방송 TF1의 퀴즈 프로그램입니다. 참가자들의 열기를 식히며 진행자가 중간광고를 안내합니다. "아 잠깐만요, 잠시 뒤에 다시 봅시다" 그리고는 다시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으로 이어집니다. 프랑스 뿐 아니라 방송의 공공성이 중요시되는 유럽 국가들 대부분에서 중간광고는 이미 일반화돼 있습니다..."

<"중간광고 새바람 타고 질 높은 광고 나올 것">(7일)..."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허용으로 광고 산업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무엇보다 질 높은 광고제작이 가능해져서 광고산업이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우리나라는 광고 금액으로 세계 8위의 광고 대국이지만, 세계 광고제에서 단 한차례밖에 수상 하지 못했습니다. 방송 광고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다양하고 질 높은 광고 제작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중간광고 왜 필요한가? 디지털 방송 전환 기틀>(11일)..."오는 2012년 말까지 지상파 방송은, 아날로그 방송을 중단하고 고음질 고화질의 디지털로 바꿔야 합니다. 이 디지털 전환을 위한 비용 마련이 중간광고가 필요한 이유입니다...케이블과 달리 무료서비스를 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의 경우 광고 수익을 늘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직접 느끼시라고 영양가 없는 내용을 부러 길게 소개했다. 눈 버려도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 방송현실이 이런 것을. 양심? 그런 것 없다. 기자정신? 그런 것도 없다. 논리? 그딴 것도 필요 없다. 보라. 떡고물에 현혹되어 좌우로 번뜩이는 음란한 눈깔들을. 중간광고 도입이 제 밥그릇 늘리기 위한 싸움이란 걸 뻔히 아는데도 "시청자들의 권익"을 위한 거라고 설레발 떤다. 시청자들의 권리를 빼앗으면서 외려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억지를 부린다. 앞에 있으면 아마 주먹이 벌써 날라갔을 게다.

중간광고를 허용하면 질 높은 광고제작이 가능해지고, 선진 외국은 중간광고가 보편화돼 있다는 어거지도 난무한다. 질 높은 광고나 질 낮은 광고나 시청자들에겐 거기서 거기요, 광고 보기 싫어 씨에프 나올 때마다 날렵하게 리모콘을 놀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란 걸 몰라서 저러는걸까? 또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치고 공영방송에 중간광고를 끼워넣는 나라가 어디 있다던가. 중간광고는 커녕 광고 자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꼭 중간광고를 해야 한다면, 그 전에 공영과 민영의 구분부터 명확히 할 일이다. 차제에 지역민방인 SBS(서울방송)가 전국방송을 카바하는 미스터리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겠지.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하자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그를 위해서라도 중간광고가 꼭 필요하다고 막무가내로 우겨대는 꼬라지도 봐 주기 민망하다. 그네들 눈에는 바깥 나라들의 지상파 방송들이 내부 경영혁신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 것조차 보이지 않는걸까. BBC방송은 직원 12%를 감원하고 경영 효율화를 통해 연간 3%의 예산을 절감해 디지털방송 재원을 충당했고, 프랑스 공영 '프랑스 텔레비지옹'은 여러 채널을 통합해 비용을 절감하면서 디지털방송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그러나 대한민국의 친절한 TV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소개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이런 걸 알아서는 아니 되는 모양.

하나하나 따지면 혈압만 올라가니, 그만 두자. 그렇잖아도 연말 대선을 맞아 서로 경쟁하듯이 미쳐가는 세상이다. 맛이 간 게 어디 TV 뿐이라던가. 과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할 때 “중간광고를 도입하면 방송이 돈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며 중간광고 허용에 강하게 반대했던 최민희 씨가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옷을 갈아 입고는 "이렇게 가나 저렇게 가나 두들겨 맞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표결처리 강행을 주도한 것도 꼴사납고, 예전에 중간광고를 막아서는 안된다고 사설로 주장했던 자칭 '일류신문'이 느닷없이 중간광고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도 남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같이 미쳐보자는데야....

꼬리가 반 잘린 여우사회에서는 꼬리 긴 여우가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 있듯이, 염치 불문 체면 불문하고 제 잇속만 차리는 세상에서 제 정신 갖고 살기가 얼마나 버거운지. 대한민국이여, 얼마나 미쳐야 제 정신으로 돌아올 건가. (2007.11.21)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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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서프>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어른이 | 2007/11/21 22:46 | 문한별 칼럼(2007)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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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torm at 2008/01/24 00:10
이런 걸 보면 노통이 얼마나 나라를 깨끗하게 이끌어 갈려고 노력했는지를 세삼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지요.
Commented by 어른이 at 2008/03/04 01:19
storm / 그런데 최민희를 발탁한 게 노무현 정권이라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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